보통 영화를 볼 때에는 ‘감상’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결코 ‘감상’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감상만 하기에는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기에 영화의 내용이 더욱 깊이 와 닿았다. 특히 중간에 위안소에서 ‘조선’이라는 이름이 들렸을 때는 속으로 탄식을 했다. 그 이후부터 영화의 모든 내용에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참담한 사건들이 겹쳐보였다. 아무렇게나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것, 죽인 사람들의 목을 버젓이 걸어놓는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영화에서 주요 다뤄지는 ‘위안부’라는 소재가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원래 영화를 볼 때 인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 싶으면 그 순간부터 집중이 잘 되지 않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무참한 지배를 당하던 이들의 절망을 모두 표현하려면 최대한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야했다.
이 영화에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도, 장면도 섣불리 고를 수 없다. 모든 장면이 충격이었고 가슴에 박혔다. 피지배자들의 영웅으로 지내며 겨우겨우 위안부가 되는 것을 피해가다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을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쟝 선생, 일본군에게 배신당하고 처제와 딸마저 잃고 나서도 따뜻한 마음만은 계속 간직한 채 아내를 두고 세상을 떠난 탕 선생, 피폐하던 삶에서 구해준 쟝 선생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위안소로 가는 여자까지. 정말 어느 하나 버릴 인물이 없던 영화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꾸며진 허구가 아닌, 그 시절에 누군가는 겪었던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 아팠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배하면서도 인간적인 척 행동하는 일본군들을 보며 치가 떨렸다. 아무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는 파렴치한이 평범한 청년처럼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먹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같은 인간을 무참히 짓밟으면서 어찌 그리 생기 있는 표정을 짓고 시종일관 웃음을 거두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영화 속 인물이 실제 사람처럼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이 모든 이야기가 상상력이 풍부한 누군가가 만든 허황된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말이 정말 신의 한수였다.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인물의 처참한 최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뒤에는 더 큰 여운을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내 기준에서 ‘좋은 영화’는 그저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나서 무조건적인 웃음과 흥미로운 전개가 없어도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징 난징>을 계기로 좋은 영화에 대한 기준이 ‘재미있는’ 영화에서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가슴에 남아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영화로 바뀌었다. 또 하나의 인생 영화가 생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