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진동으로 울리는 벽과 가전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은지 며칠 째, 노트북을 들고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도 슬슬 버거워지고 있다. 파리의 아파트는 대부분 8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인데다 그중에 현대식으로 레노베이션 Rénovation 을 시공한 집도 벽은 종잇장처럼 얇디 얇은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즉슨, 밤낮으로 이웃의 소리가 심심치 않게 벽을 타고 와 들린다는 뜻이다. 센느강이 보이는 집을 얻어 마냥 좋아라 하던 정착 초기 몇년을 흘려보내고 나니 이제 슬슬 단점들이 더욱 눈에 띄고 있는 요즘. 불만들을 하나씩 털어볼까 한다.
파리의 건물은 한국식 1층을 0층 Rez-de-chaussée 라 말하고, 한국식 2층을 1층으로 센다. 보통 0층에는 건물 관리인이 상주하여 살거나 학생들이 주로 사는 작은 스튜디오(원룸) 형식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인 우리집은 상대적으로 윗층보다 땅과 가깝다 보니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차 소리, 사람 말소리까지 가끔 들리는 정도. 물론 창문을 닫고 살지만, 환기 시킬때 그리고 주로 아침에 여는데 도로 먼지도 솔찬히 날아들어와 관리도 여간 쉽지 않다.
집, 즉 주거 공간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공간이 바뀌면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11m2 좁은 원룸에서 몸을 구기며 살던 때와 비교하면 분명 내게 맞는 형태의 주거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삶을 위협하는 단점들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여러 가구들이 함께 사는 건물은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프랑스에선 아파트나 내에 공사를 할 경우 정해진 기간 전 미리 주민들에게 공지를 알려야 하고 일정한 기간 이상은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내 집 내가 고치겠다는데 허락을 맡아야 하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다 같이 사는 공동주택이니 이웃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지를 띄우는 것은 서로가 공공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보통은 건물 관리인 Gardien, Gardienne 또는 Syndicat 노동조합에게 먼저 알리고, 약속된 기간 내에 시공을 꼭 끝내야 한다.
대충 오전 8시 반즈음 부터 30분 텀을 두고 간헐적으로 저녁 4-5시 까지는 멈추지 않고 집이 드릴 진동으로 울린다. 종종 친구들이 건물 내에 시공이 시작되었다며 낮시간 동안 집을 피해 카페나 도서관으로 피신을 가 있곤 하던데, 내 일이 될 줄이야!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강제로 피신해 있어야 하는 경우에 처해보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온전한 나의 공간인 내 집에서 맘 편히 쉴 수 없게 된 이후로 평화롭던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달까.
소음 뿐만이 아니라, 파리에 몇십년 씩 살고 있는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딱 잘라 속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하는 이웃간의 문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마리화나(대마초) Weed 를 밤낮이고 피워대는 이웃을 둔 사람들이 호소하는, 숨막히는 냄새의 문제. 집 아래 층에 이주한 새로운 입주자는 굉장히 젊은 남성인데 오며가며 몇번 인사를 하는 나쁘지 않은 사이였다. 그가 오고 나서 부터 집에서 쿰쿰한 마리화나 냄새가 슬금슬금 나더니, 화장실 벽을 타고 올라와 가득 퍼져 침실까지 냄새가 기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냄새가 대체 어디서 나는거야 싶어 몇번을 집 밖으로 나가서 확인해 봐도 주변에 피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다가 어느 날 창문을 열어 밑을 내려다 본 후에야 미스테리는 풀렸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게 흡연자에게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다. '오락용 흡연’의 대마초 피울경우 징역행이 아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일 정도로 시민 인식은 나쁘지 않은데다 치료용으로도 사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왠종일 집안에서 피워대는 아랫집이 있다면 삶이 굉장히 피곤해진다. 창문으로 화장실로 아주 집안 곳곳에 퍼지는 대마초 냄새를 빼느라 지금도 적지않은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지난 날 마주친 가디언에게 컴플레인은 했지만, 사실상 해결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노동조합과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사실 공사야 곧 끝날테고 (끝나야 하고), 밑에 층 집 대마초도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내면 된다. 문제는 마음에 있다. 작년 매일 왕래하며 세상 다정다감해 친하게 지낸 가디언 아주머니가 살던 곳으로 귀향하신 후 안그래도 우울한 파리의 겨울을 버티느라 힘들었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하나둘씩 터지니 데미지가 컸나 싶다. 살면서 집에서 이러한 사소한 문제 하나 겪지 않는 사람 있겠냐만은 실상 사소하지만은 않기에 고민은 깊어진다. 가끔 터지는 수도관과 씨름하는 친구의 웃지못할 얘기나 난방이 작동하지 않아 전기장판으로만 한겨울을 버티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허다한 현실이니. 세계 어디를 가나 겪을 수 있는 문제기도 하고, 프랑스기에 더욱 골칫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또 어떤 스펙타클한 일이 터질까 기대되는 파리 생활, 적금처럼 10년정도는 부어야 익숙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