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산책에 관하여

kyslmat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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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중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와 더불어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가로 손꼽히는 장 그르니에는 철학교수이자, 카뮈의 스승이기도한데, 그의 글은 일상의 익숙한 것들에 대해 생소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 힘이 있다.

 흔히 ‘공백’이라고 하면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 또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으로 인식되기 쉬운데, 장 그르니에는 공백을 '창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공백은 우리가 사랑할 빈틈을 마련하는 것이고,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찾게끔 하는, 창조적 활동인 것이다!

 가끔 질척대고, 서걱대는 일상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갇힌 틀을 맴도는 느낌이 들고, 새로운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 그런 때 말이다. 그럴 때, “아 여행을 가야할까.”는 생각을 하는데, 그 말은 단지 푸념으로 끝날 때가 많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산책’이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산책을 통해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여백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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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있는 긴 하천 길을 자주 걷는다. 아이들이 탄 자전거를 밀면서, 킥보드를 끌면서 그 길을 걷는다. 하천엔 오리가 떠다니고, 간혹 작은 물고기들이 오락가락하는 걸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강아지와 함께 걷고, 이어폰을 꽂은 채 조깅을 한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하천의 유속처럼 매우 잔잔하고 느리다. 뚜렷한 목적이 없는 시간이다. 어느 날은, 오리를 봤으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어느 날은 저 아래 징검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봤으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누구도 산책을 통해 뭘 얻어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해도 좋을 시간이다. 그저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내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 내가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다.

 치열하게 사는 누군가에게 그런 시간은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거기에 쓸 시간이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난 한가하지 않아. 내 일을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쓰는 사람에게, 일상의 공백 없이 아웅다웅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사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지 모른다.

 “훗날 남아도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산책하기 위해서 지금 애써야 합니다.” 라고.

 꽃향기가 나는 비싼 향수를 사기 위해, 꽃이 만발한 들판을 보지도 않고 달려가는 아이러니.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장 그르니에의 이 글을 읽고 다시 가슴이 뛴다.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나직이 되뇌어 본다. 거기는 꽉 채워진 무언가론 다다를 수 없는 곳이다. 내가 찾는 순수한 사랑은 어떤 것일까. 난 무얼 바라고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 걸까.

 오늘도,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일상의 구석구석에 덕지덕지 붙은 ‘무언가를 위해서’ 라는 목적과 당위를 떨쳐내며 팔다리를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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