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형태를 요약하면 용두사미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서론을 써낼 재주는 있으나, 논리적 짜임새는 모자라다. 나는 심사숙고 끝에 깊이 있는 글을 짜임새 있게 완성할 재주가 없다. 분명 한가지 주제로 시작한 글임에도 단락들을 써내려 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정신 없는 글이 되고 만다. 그래서 출판을 목적으로 한 글을 쓸 때 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문체를 가다듬고 단락들을 조립한다. 하지만 글은 조립식이 아니다. 각 단락은 분리할 수 없어야 한다. 필요 없는 단락이 있는 글은 잘못된 글이며 모든 단락은 앞의 단락과 연결되야 한다. 하지만 내 글은 그렇지 않다. 내가 대입을 준비하며, 단락의 순서를 조립하는 문제를 어려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쉽다고 하는 유형인데 나에게는 항상 어려웠다. 추론 능력이 문제였을 것이다. 나는 상상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어 단락간의 연결을 유기적으로 해석한다. 아무리 구조적으로 엉망인 글이라도, 나름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 유형 문제풀이를 가르칠 때도 어려웠다. 나는 문제풀이만을 위한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유형만큼은 그렇게 가르칠 수 밖에 없었다. 접속사와 문단의 첫문장과 끝문장만 읽고 연계성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풀게 했다. 다시 내 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타인의 글을 그리 대하는데 내 글을 어떻게 다르게 대하겠는가? 구조적으로 망가졌어도, 내 나름대로 이유를 만들고 해석하기 위한 길을 찾아버린다. 문제의식을 갖지 못 한다. 요약하면, 내 글은 출판에 적합하지 않다.
내 문체는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다. 나는 떠드는걸 정말 좋아한다. 내 주절거림이 싫어서 나를 혐오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내 논리적 사유(존재한다면)의 바탕은 주절거림에서 나온다. 내 글의 형태가 용두사미인 이유를 알겠는가? 술자리에서 내가 A를 싫어하는 이유를 밝힌다고 하자. 처음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시작한 말도 "아무튼!"으로 끝이 난다. 내 문체는 그 술자리 토크를 그대로 옮긴 방식이다. 그래서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에 있다. 동어반복이 잦기도 하고, 문장을 제대로 마치지 않기도 한다. 혹자는 이를 "옆에서 이야기 하는거 같다."고 좋게 보기도 하지만, 혹자는 이를 "같잖은 글."로 평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출판에, 그것도 진중한 주제를 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문체다. 그래서 기껏 쓴 문장들을 하나하나 다 고쳤다. 참 우스우면서 슬픈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주로 온라인 상에 게재하는 가벼운 글은 어떨까. 슬프게도, 가벼운 소재를 이용한 글에서는 내 단점이 극대화된다. 무거운 소재에 대한 글은, 그 소재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그 중압감이 내 문체가 만들어내는 느낌을 짓누른다. 그래서 미친 글도 덜 미쳐보일 수 있으나 가벼운 글에서는 그럴 수 없다. 게다가 가벼운 글은 소재 뿐 아니라 길이부터가 짧다. 그래서 내 나름의 논리적 구조를 확립할만큼의 단락을 확보할 수 없다. 미친듯이 튀는 내 정신을 가라 앉힐 글의 큰 틀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긴 글도, 짧은 글도, 무거운 글도, 가벼운 글도 못 쓴다.
이 모든 문제는 부족한 끈기에서 시작했다. 나는 느긋하게 실력을 쌓을 능력이 없다. 조금만 늘어져도 답답하다. 연습이 필요한 일을 감당하지 못 한다. 속성으로 조금 배우고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림도 못 그리고, 악기도 못 다룬다. 둘 다 시간을 적게 쏟진 않은 취미지만, 바닥을 쌓지 않고는 참 즐기기 어려운 취미들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토플 시험을 위해 억지로 글을 구조에 짜맞춰서 쓰는 연습을 한 적 있지만, 그게 전부다. 그저 점수를 위한 연습이었을 뿐. 아마 인생에도 점수가 있었다면 조금 더 경쟁적으로 점수를 쌓기는 했겠다. 나는 점수를 사랑하니까.
이처럼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다. 대신 묘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오래가지 못 하는 끈기 대신, 폭발적인 단기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이다. 지금부터 늘어놓을 이야기는 내 자랑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내 폭발력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들이니 이해하시길. 아니다. 너무 자랑 같아서 그만둔다. 그냥 그렇다고 알아주시라.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지만, 글에서는 별로 살리기 어려운 재주다. 그림이야 밑그림 없이 망설이지 않고 슥슥 그려나가는 그림도 가치 있고 꼼꼼하게 그려나가는 그림도 가치가 있다지만, 밑그림 없이 써내려가는 글은 그냥 부족한 글이다. 지금은 내 독특한 사상과 정신이 나간 문체를 즐겨주시는 독자 분들도 계시지만, 스팀잇은 글의 가치가 아니라 생각의 가치에 보상한다지만, 역시 좋은 글은 아니다. 내 사상이 진정 가치가 있다면, 사상과 사상의 기저에 깔린 사유까지 이해할 수 있는 파트너 작가가 쓸 글이 더욱 좋은 글일 것이다. 하지만 겁이 많아서 새로운 일을 하기도 어렵고, 사회에 녹아들 융통성도 없는 내가 무엇을 누구와 할 수 있을까. 통제광인 나를 견딜 파트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주가 있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나와 협업을 하겠는가? 그래서 글을 쓰기는 해야한다.
그러다 지난 주에 실마리를 찾았다. 나는 댓글 하나를 시작으로 글 2편을 써냈다. 폭력의 미학이라는 글과 오리지널리티를 잃은 인류였다. 둘 모두 댓글 하나에서 제시된 키워드들로 써낸 낸 글이다. 그리고 그림 하나에서 시작한 글도 있다. 여신의 고뇌라는 글이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원작자께서 기본 설정은 만들어 두셨지만, 역시 내 즉흥적인 영감을 살린 글쓰기에 대한 실마리였다.
내 괴상한 사상으로 키워드들을 즉각적으로 해석하고, 즉흥적인 영감으로 써내는 인스턴트 글. 즉흥적으로 써낸 글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을 명문은 아니겠지만, 그 순간에만큼은 독특한 가치를 형성하리라. 위대한 요리사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요리도 좋지만 내가 끓인 컵라면도 맛있다. 내가 쓰면 한나절로도 부족할 분량을 2~3시간에 써내는 분들도 많은걸 보니 컵라면이라기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거창하게 늘어놓았지만, 결국, 그냥 하던대로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결론에 도달한 이제서야 알았다. 정말 즉흥적으로 쓰긴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