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갔다 와야겠다는 말을 꺼낸 후 여기저기 거론된 곳은 주로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들이었다. 마흑세이, 몽플리예, 칸... 4월을 앞두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추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남부의 햇살과 쪽빛 바다가 아니었다.
설산.
불현듯 스친 그것으로 내 머릿속은 가득 찼다. 모르겠다. 따스한 햇볕으로 가득한 봄을 기다리고 있던 때에 하필 왜 더 추운 곳으로 가려 했는지. 아마도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한겨울에 태어나, 한겨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 눈이 참 많이 왔다. 덕분에 세상은 고요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태어났던 날도 그러했으리라.
아버지는 한평생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 미지에 대한 내 열망이 더욱 간절해진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더 많은 곳을 가고 보고 경험하겠다는... 그것이 비록 삶과 죽음에 관한 내 생각과 불일치할지언정.
아버지의 빨간 체크무늬 플란넬 셔츠를 여행 가방에 챙겨 넣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날은 아직 어두웠고 하늘의 별은 총명하게 빛났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그래서 더욱 고요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이른 시각이라 해도 버스는커녕 자가용조차 드물었다. 정류장 전광판에는 대기 시간조차 뜨지 않았다. 기차 시간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불길한 느낌에 재빨리 콜택시를 불렀다.
1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택시를 탄 나는 기사에게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기사는 내가 탈 기차를 물었고, 그다음엔 내비게이션을 몇 번 두드리는가 싶더니 기차가 들어올 시각을 실시간으로 조회했다. 택시는 시내를 내달렸다. 역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L과 D를 만난 순간, 승강장에 기차가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은 부활절 다음 월요일이라 사실상 휴일이나 다름없어 버스 운행도 없었던 것이다.
4월의 프랑스 땅을 가로지르는 기차 안에서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고 땅은 아직 시려웠던 봄 어딘가로 기차는 달려간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위해 찾은 식당칸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니
점박이 잭 러셀 테리어와 함께 여행 중인 여자 둘이 들어왔다.
주인이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둘 데 없는 눈으로 여기저기 훔치던 개는
이내 적당한 곳에 마음을 빼앗겼다.
빨간 지붕의 리용을 지나
반짝이는 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덧 마음에 그리던 곳과 가까워졌다.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미네랄 풍부한 물은
그 속을 알 수 없어 수심을 드리우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때까지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름 모를 붉은 성을 지나
수심을 뒤로 한 채 한 걸음 더 가까이.
마음은 점점 고동쳐 간다.
멀리 보이는 설산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가까운 도시의 기차역 풍경은 섣부른 실망을 안겼다.
나는 아직 이 도시를 모른다.
안시.
혼-알프 지방의 주도主都인 그흐노블에서 1시 방향에 위치한 도시.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혼자 온 여행이 아니기에 4박 5일의 일정을 전부
하얀산 밑에서 보낼 순 없다.
역에서 도보로 2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매일 늦게까지 와인과 음악에 취해 밤을 보냈다.
D가 왈츠를 가르쳐 준 게 생각난다.
짐을 풀고 곧장 관광의 중심지인 구시가지로 나갔다.
운하가 흐르는 오래된 마을은 유럽의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골목길마다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레지던스의 주인 아주머니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며
꼭 들러보라고 했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로 만들었다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맛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안시 호로 향했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나치게 차가웠지만 그건 사람에게만 그런가 보다.
머무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녹아내린 눈은 며칠 후 산의 민낯을 완전히 드러냈다.
저 멀리 하얀산만이 마지막까지 하얗게 빛났다.
그 산은 한결같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똑같은 곳에 기원을 둔 물일 텐데 기차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맑고 투명한 호수에 정체 모를 불안감은 조금씩 희석되어 갔다.
나흘 째 되던 날,
선착장에 누워 호수에 발을 담그고 망중한을 즐겼는데
그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차가운 물이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느라 과열된 발을 식혀주었다.
햇빛은 외투를 벗어 던지게 했고, 호수에 담갔던 발을 금세 말려주었다.
뽀송뽀송 마른 발에는 모래알갱이만 퍼석하게 남을 뿐이었다.
석양에 붉게 빛나는 산맥을 뒤로 하고
날카롭게 능선을 번뜩이는 다음날 아침의 산맥을 다시 맞았다.
기차를 타고
웅장한 산맥을 끝없이 흘려보낸다.
나는 하얀산을 향해 가고 있다.
환승역에서 바라본 산맥은 너무 눈이 부셔 맨눈으로는 마주할 수 없었다.
나는 점차 하늘에 다가가고 있다.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뚜렷하게
하얀산으로.
하얀산에 자리잡은 마을 샤모니 몽-블렁.
환승역에는 분명 사람이 많았는데 여기까지 온 건 고작 몇 명뿐이었다.
기차역에서 나와 다시 기차역을 돌아봤다.
이국에서, 그보다 더 이국적인 풍경을 본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마을은
지금껏 보지 못한 선명한 풍광에 둘러싸여 있었다.
시간여행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곳에 차가 다닌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공기는 차가운데 갈증이 났다.
그보다 더 차가운 맥주로 목을 축인다.
역 맞은편, 마을 어귀에서 점심을 먹고 움직이기로 했다.
멕시코에서 온 L은 프랑스에서 수많은 흐린 날을 지내는 동안 우울해졌다.
그녀는 휴가를 안시에서 보내게 된 것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4월의 남부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바다에서 수영하기엔 수온이 너무 낮다.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마을 중심가로 들어갔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설산이 보이는 마을.
최초로 몽블렁에 오른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된 마을 의사.
당신이 본 그 풍광을 보고 싶어 나도 이곳에 왔소.
바람에 산봉우리의 눈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L은 커피 한 잔 하며 쉬엄쉬엄 가기를 원했다.
나는 우선 산을 오르고 싶었다.
이곳만해도 이미 해발 1,000m가 넘는 곳.
산에서는 해가 금방 지고 기후도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저녁 먹을 식당과 메뉴를 봐두려고 했다.
급기야 나는 거의 싸우다시피 그녀를 설득하려 들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그렇게 겨우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직행했다.
사실 나는 하얀산을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는 걸 안시행을 마음에 품고 나서야 알았다.
그저 하얀산 자락에서나마 위를 올려다보길 원했을 뿐이다.
케이블카로 정상 가까이에 있는 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는 건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약한 문명인이 문명의 이기를 빌려 오르려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바람이 거세져서 첨봉의 평탄한 지점까지만 운행한다는 것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남쪽 첨봉보다 1,500m 이상 낮은 지점이었다.
산은 산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연은 의지를 갖지 않는다고 믿는 나는 그 생각을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로 얼른 바꾼다.
그렇게 오른 중간 지대에서 우린 거대한 산맥과 마주했다.
현실감 없는 풍경이 눈 닿는 곳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절경 한 부분 한 부분을 처음으로 눈에 담고 있을 때
남쪽 첨봉 전망대로부터 내려온 마지막 케이블카가
설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생은 타이밍.
계속 그 말이 되뇌어졌다.
이 순간 무엇보다 생각난 건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트렌치 코트와 플란넬 셔츠와 방한용 장갑을 끼고 이곳에 왔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는 생전에 본인 눈으로 이 비경을 못봤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문득 뒤돌아보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두 날개를 곧게 펴고 하얀 설면을 스치듯 내 앞을 날아간다.
그 순간 이 세상에는 오로지 새와 나와 하얀산만이 존재했다.
푸드덕거리는 날갯짓에 내 심장은 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관광객은 멀리 제각각 흩어져 있었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독수리는 이미 내가 보고 있던 계곡을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각자 나름의 이유로 우리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L의 인생샷을 찍어줬다.
그녀는 이날 처음으로 눈을 직접 보고 만졌다.
다음에는 저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해는 이미 크게 기울고 있었다.
내가 올랐던 전망대도 우리 다음으로 케이블카 하나만 더 올려보내고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최고의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최악의 타이밍도 면했던 것이다.
나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마을을 천천히 산책했다.
이때는 카메라가 없었다.
내가 쓸 수 있는건 악명 높은 사진 퀄리티의 아이폰4s.
나는 아직도 같은 폰을 쓴다.
어떤 건 헤어지기 힘든 이유가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하나의 기억이든...
하얀산이 잘 보이는 카페에 잠시 머물렀다.
산 위에선 오히려 더울 정도였는데 내려오니 다시 추워졌다.
우리는 금가루가 뿌려졌거나 럼주가 들어간
설경과 잘 어울리는 디저트와 홍차와 핫쵸코를 시켰다.
나는 디저트와 차를 좋아한다.
본식에는 크게 흥미가 없다.
L은 너무 달다며 핫쵸코를 반 정도 남겼다.
식료품점에 들러 한국과 프랑스에 있는 지인들의 선물을 샀다.
초콜릿, 와인, 허브차, 꿀...
모두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이러한 일련의 행위에서 어른의 삶을 실감한다.
한마디로 좀 귀찮다.
노을 지는 설산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을 함께하지 않은 D가 안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후 찾아올 남자친구와 함께 올 예정이라며 남았던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를 떠날 때까지 끝내 하얀산에 가지 않았다.
기차를 기다리는 건 우리와 다른 둘뿐이었다.
해가 산봉우리 뒤로 긴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기차가 들어오고
자꾸 아쉬운 마음에 차창 너머로 몇 장 더 찍는다.
두고 갈 게 있다면 두고 가야 하는데.
다음날 찾은 안시 호의 물은 여전히 맑았다.
설산은 점점 민낯을 드러냈고
하얀산은 저 뒤에서
그렇게
언제까지나.
연재에 들어가기 앞서 프롤로그격으로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