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알파와 오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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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들어가기에 앞서

  늦은 밤, 샤워를 끝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컴퓨터 앞에 앉는다. 가족들은 물론 위층 사람들도 오늘따라 일찍 잠자리에 든 모양이다. 방 안을 적당히 어둡게 밝힌 불빛은 글쓰기 세계로 빠져드는 최면을 건다. 그런데...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먼저 자신이 정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지 점검하자. 에디터를 켜 놓고 2~3분 끄적이다가 인터넷 창을 열진 않았는지, 피드를 돌아다니고 댓글을 다는 동안 30분이 훌쩍 지나지 않았는지, 다시 에디터로 돌아와 ‘아, 어떻게 쓰지, 뭘 쓰지’ 고민하다가 침대로 뛰어들어 인스타와 카톡을 뒤적이진 않았는지.

  거듭 말하지만 글쓰기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나 역시 중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걸 매번 겪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작가 대부분이 그러했다. 오죽하면 어딘가에 갇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다만 이들은 여러분이 학교와 직장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만큼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니 그런 필요를 느끼는 거고, 여러분은 일기 같은 짧은 글을 쓸 만큼의 때와 장소를 찾으면 된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뚝딱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 자신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할 만큼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니 지레 겁먹는 분들이 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얘기하겠다. 사실 이 세상에 글쓰기만큼 만만한 작업도 없다.

"저도 책이나 한번 써 보려구요.”

  실제로 진짜 많이 보고 들은 말이다. ‘아, 책이나 내볼까’ 하는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웹툰이나 그려야지’라든가 ‘작곡이나 해야지’라는 생각은 거의 안 하는 반면 ‘글이나 써야지’는 참 쉽게 말한다. 왜일까?

  글은 기본적으로 말(생각)을 옮기는 작업이고 말(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도구인 글자를 쓰는 법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말 그대로 쉬울 수밖에.

  환경도 갖췄고 집중도 된다. 그런데도 글이 안 써진다면?






노파심에 짚고 넘어가는 알파

  새벽녘, 텅 빈 코트를 가로지르며 드리블하는 그대. 전국 제패를 목표로 남몰래 특훈 중이다. 한데 당신은 아직 만년 후보다. 서태웅이 여학생들의 시끄러운 응원을 받으며 잘난 척할 동안 구석에서 공만 튕기는 신세다. 그래서 비장의 무기를 갈고닦기 위해 새벽녘부터 농구 코트에 나왔다. 슛은 할 줄 알아야 스타팅 멤버에 낄 수 있지 않겠나 싶었던 것이다.

  내 맘대로 슬램덩크를 하고 싶지만 고릴라 주장이 가만두지 않는다. 다행히 한나 선배가 레이업슛이란 걸 귀뜸해 줬다. 기본적인 슛이란다. 그놈의 기본. 짜증나지만 적어도 레이업슛만 할 줄 알면 고릴라 주장 눈에 들 수 있다는 말에 연습하기로 했다. 어,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지?

  생각나는 건 애들이 코트 위를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공을 던지고 받고 넣고, 그런데 서태웅은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고, 소연이마저 눈에 뿅뿅 하트를 그렸던 것밖에 없다.

  주장의 요구에 못 이긴 서태웅이 공을 두고 오니 어쩌니 하며 시범을 보여줬는데 눈여겨 보지 않았다. 공을 어디다 둔다? 림 앞쪽? 뒤쪽? 왼쪽? 오른쪽? 정중앙? 모르겠다. 점프를 어디쯤에서 해야 할지, 언제 손을 뻗어야 할지 아는 게 없다.

  이제 여러분의 입장으로 돌아오자.
  글을 잘 쓰기로 결심한 그대.
  잘 읽었는가?






노파심에 짚고 넘어가는 오메가

  대부분의 동물은 모방을 통해 기술을 배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아기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며 일어나 걷고 말을 한다. 아이가 표정을 짓는 것조차 모방의 결과다.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영업직에 취직한 성인도 사수에게서 요령을 전수받아야 영업의 첫발을 뗄 수 있다. 모방과 연습은 일생을 통해 계속 반복되는 일이다. 글쓰기라고 다르겠는가?

  다시 코트로 돌아가 보자. 구석에서 하염없이 공을 튕기는 동안 당신은 다른 멤버들이 펼치는 연습 경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선수 각각의 개별 플레이는 물론 경기의 전반적인 흐름도 기억나는 게 없다. 막막하다. 이때 어디선가 탕탕 공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 코트에 한 무리의 중딩들이 오더니 경기를 시작한다. 보니까 레이업슛이니 점프슛이니 곧잘 하는 것 같다. 자존심 상하게 서태웅의 폼을 보고 있을 바엔 아침마다 얘네들 경기를 보며 익혀야겠다….

  ???????

  여러분이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포함해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은 레퍼런스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 몇 번의 퇴고 끝에 작가-편집자-교정자를 거쳐 독자의 선택을 받은 글과 단지 시류에 몸을 맡겨 좀 더 편하게 쓴 글이 같을 수는 없다. 동경하는 선수가 있는가? 그들의 폼과 경기 운영을 눈에 새기자. 일류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를 놔두고 다른 걸 봐야 할 이유가 없다.

  다독이냐 정독이냐 답은 없다. 나는 정독파다. 한 권을 끝내기 전까지 다른 책에 손대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중간에 책을 던지는 일도 없다. 돈 주고 산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읽는다. 게다가 사르트르의 『구토』처럼 마지막까지 가야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는 책도 있다. 지금껏 중간에 던진 책이 딱 두 권 있는데 하나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가 선물한 자기계발서였다. 불의 잔은 지루했고 자기계발서는 원래 내가 읽는 종류가 아닌데다 궤변이 심해 어쩔 수 없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매년 사들이는 책은 많지만 대부분은 노후 대비용이다. 작년에는 세 작품 정도 읽은 것 같다. (권수가 많아도 한 작품으로 친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경우도 드물다.

  내 지인 중에는 정반대의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다독이 기본이다. 중간에 아니다 싶으면 덮어 버린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문학이 아니라 철학을 하는 친구인데 대상에 대한 기반 지식이 탄탄할 뿐더러 읽는 순간의 집중력이 대단하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독서법에는 정석이 없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읽으면 된다. 다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하자.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썩 좋지 않은 책을 읽느라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다음에 읽는 책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글이 곧 여러분의 스승이다. 그러니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레퍼런스급 글을 통해 좋은 문장과 구성을 머리에 자연스럽게 새기면 ‘어떻게 써야 하지’ 막막할 때마다 그 글이 여러분께 들려준 목소리와 말투가 생각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은 글쓰기를 위한 준비를 마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