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야지. 모두가 너에게 기대를 걸고 있단다. "
"하지만 만약 시험에서 떨어지면요?"
"떨어지다니? 그런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야.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요새는 핸드폰으로 지하철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는게 매우 지루해졌다.
그래서 서점에서 책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는데, 무거운 것을 가지고 다니기 싫고 아직은 책에 눈이 짧은 나는 두꺼운 책이 부담이었다. 그러던 도중 미니북으로 나온 책들 시리즈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점의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 길래, 미니북에서 아무거나 골라서 가져왔는데 이제 보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였다. 출퇴근시간을 오가면서 3-4일정도 빠르게 읽을 만한 양이었다.
내용은 치열한 공부열과 성공열에 지친 한스 라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는 총명 받는 수재였고 최고의 학교에 입학하여 엘리트의 길을 걷다, 계속되는 공부의 스트레스에 못 견뎌 두통을 앓고 마음병을 가지게 된다. 나중에는 학교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일을 배우지만 방황을 하다가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사실 헤르만 헤세의 유년기 시절을 반영하기도 했다. (이때 19세기 말의 독일 시대배경이었기에 군사학교 체제등과 공부열이 매우 치열했으며, 학생들의 자살문제가 매우 심각했다고 본다.
"도대체 이해할 수 가 없어요. 그토록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는데 말이예요. 학교도 시험도 모든 게 잘 풀려 나갔었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불행이 닥쳐왔어요."
이책에서의 주변 인물들은 대부분 한스를 '휼륭한 사람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스한테 각인시킨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원하는, 아니, 한스가 원하는 '되고 싶은 사람'은 어땠을까? 목사, 선생님, 한스의 아버지등 많은 사람들은 한스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산책을 권유하지만, 사실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컨디션조절과 관리를 권하는것 같다. 점수가 떨어질까봐 자신들의 기준에서 질나쁘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어울리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한스가 쉬는것도 좋지만, 공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책을 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서 생각했던 것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능동적인가이다. 책속에서는 치열한 공부열속에 달려가는 한스의 상태에 대해서 안타깝게 묘사를 하고 있으나, 그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한스가 공부에 빠져들고, 공부와 성공의 경쟁외에 다른 가치에 대해서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 행위를 제한하게끔 만드는 ‘주변인과 환경’에 대한 것이다. 사실 공부를 죽어라 하고, 경쟁사회에서 1등을 쟁취하는 것을 추구하는 삶은 각자의 선택이자,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의 입시열등은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으나, 그것보다도, 그러한 환경과 분위기가 한 사람으로 있어서 나의 삶과 인생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꺾게끔 만드는 게 문제이다.
나 또한 공교육과 사교육의 입시전쟁을 겪고 현재는 취업시장에서 겨우 취업의 한 문턱을 넘은 사람이지만, 끊임없는 교육열과 경쟁열 속에서 나의 선택과 남들의 기대를 견주어 가며 살아야 한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는가?) .단, 그 누구도 내 인생에 대해서 이것이 옳은 길이니 너는 이렇게 해야한다! 라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실 그 누구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하지만 명시적으로 이것이 맞으나, 그 누구도 강요를 하지 않으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강요를 받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불가피 하게 주변의 기대와 기준에 따라서 우리는 끌려가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한스의 주변인들은 한스를 걱정하면서도 그들이 한스가 했었으면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어쩔 때는 칭찬을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규칙과 벌,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하며 한스에게 옳은 길을 말해준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이 과연 나에게 맞는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나의 기준이 없냐는 것이다. 아니, 내가 정말 이 일로 인해서 행복한지를 되물을 수 있는 것. 남의 기준에 비추어서 나를 관찰하는 주관적인 시선이 아닌, 나를 내 기준에서 비추어본 객관적인 시선. 그것이 가려지는지 아닌지를 의심해 봐야 하는 힘을 기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아정체성을 막 형성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위와 같이 강요받고 강요하는 사회는 상처와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그 질서속에서 벗어나서 자유의 몸이 된 성인때, 삶의 이유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탐구하지 못해 마음의 병을 잃고 힘들어 하는 학생들도 수두룩 하다. 우리는 시험의 관문을 수두룩하게 배우면서도, 어떻게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하는지, 판단을 해야하는지의 자양분을 배우는것은 매우 드물다. 물론, 인생에 있어서 삶의 이유와 행복의 이유는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하지만, 그것을 질문할 수 있는 '힘'을 어렸을적부터 기르는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튼 한스에 나를, 또 다른 누군가를 비춰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성공과 공부열로 인해서 마음이 망가졌던 소중한 사람을 알고있었기에, 또한 나도 대학교에와서 그것으로 인한 후유증이 심했었기에, 지금와서도 나는 그렇게 교육열을 일으키고 학생들끼리의 경쟁을 부추키는 스파르타적인 교육방식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고는 본다. 그러나, 그 공부열이 있는것과 별개로, 우리가 그러한 치열한 환경속에서도 건강하게 노력해야 하는 토대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정신적인 체력을 교육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교육의 재료와 씨앗을 제공해줄 지언정, 그 씨앗을 키우는 주체의 토양을 마음대로 헤쳐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