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성에서 시작해 전쟁 당시의 흔적들을 따라 걷다 보면, 이제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장소인 원폭돔(原爆ドーム)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은 원폭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물이지만,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원폭돔의 원래 이름은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広島県物産陳列館)이었다. 1915년에 완공된 건물로, 체코 출신 건축가 얀 레츨이 설계했다. 당시에는 붉은 벽돌과 석재, 유럽풍의 돔을 갖춘 상당히 이국적인 건축물이었는데, 당시 히로시마 시내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 2층 건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시기를 보면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인 도쿄역과도 재미있는 비교가 된다. 도쿄역은 1914년, 이 건물은 1915년에 완공됐으니 불과 1년 차이다. 물론 같은 건축가가 만든 건물은 아니지만, 일본이 서양식 근대 건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비슷한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히로시마는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도시였다. 메이지 시대 이후 군사시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군도(軍都)’로 성장했고, 우지나항과 철도가 연결되면서 병사와 군수물자를 대륙으로 보내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동시에 산업과 상업도 발달하면서 중국 지방의 정치·경제·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런 도시의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물산진열관이었다. 히로시마현의 특산품과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했으며, 상공업에 관한 상담이나 조사도 이루어졌다. 전시회와 미술전, 박람회 등이 열리는 문화공간의 역할도 했다.
건물은 1층을 주로 사무공간으로 사용하고 2·3층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특히 모토야스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해 강 건너에서도 건물의 독특한 돔이 잘 보였고, 당시 히로시마의 새로운 모습을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전쟁이 격화되면서 건물의 역할도 달라졌다. 1944년에는 물산진열관으로서의 업무가 중단되고 관공서와 통제기관의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 폭심지에서 불과 약 160m 떨어진 이 건물은 원폭의 폭풍과 열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건물 대부분은 무너지고 불에 탔지만, 중심부의 철골과 벽 일부가 남았다. 이후 사람들은 돔을 이루던 철골의 형태를 보고 이 건물을 ‘원폭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원폭돔은 전쟁과 원폭의 상징이지만, 그 이전에는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향해 빠르게 변하고 있던 히로시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폭돔을 볼 때는 폐허가 된 모습만 바라보기보다, 이곳이 원래 어떤 도시였고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었는지 함께 알아보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화려했던 유럽풍 건축물이 한순간에 폐허가 되고, 그 폐허가 다시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의 원폭돔은 그 변화 자체를 그대로 남겨놓은 히로시마의 역사적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