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작가들의 고뇌가 설마 나에게 찾아오리란 생각은 못 했다. “왜 저럴까?” 그냥 떠오르는 단어를 유영하듯 자유로이 써 내려가면 될 텐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다시 써보려고 해도 딱히 생각나는 건 없다. 백지에 홀로 놓인 커서를 지켜보다, 등을 긁적인다. 피가 났다. 아프다. 아. 아프다. 어지간히 긁어대야 피가 나는 건데
생각의 끈을 잡고 당기다 보면, 우물이 오염됐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망했다. 아. 망했다. 어디서 본 거, 어디서 읽은 거, 어디서 들은 거, 영감이라는 단어로 둔갑해서 슬쩍 주머니에 찔러 넣다 보면, 무의식 속에 자괴감이 차오르고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잃어버린다.
배고프다. 아. 배고프다.무인도에 도착했다 /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