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황, 단면만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선입견처럼 굳어지기에
어떤 상황에서 만났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유시민이란 사람이
정치란 걸 할 때부터 알게 되었다.
평소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에
그는 그냥 정치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를 별로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썰전을 봤는데
글을 쓰는 작가라고 했다.
정치를 그만두고 글을 쓰는 건가? 라고
생각을 했는데
원래 작가였단다....^^;;
썰전을 보지 않았다면..
유시민이란 사람이 똑똑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이 책 또한 읽지 않았을 것이다.
#1 (p.49, 59)
글쓰기는 재주가 아니다.
사람이 가진 여러 능력 또는 기능 가운데 하나다.
중요한 것은 학습과 훈련과 경험이다. 재능이 아니다.
누구든 노력하고 훈련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다.
논리글쓰기는 문학글쓰기보다 재능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조금 과장하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안도현처럼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유시민 만큼 에세이를 쓸 수는 있다.
만약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업무에 필요한 글이나 취미로 쓰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능 없음을 미리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도 재능이 있어야만
잘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노력만 하면 잘 쓸 수 있다니 참 다행이다.
스팀잇을 하다보면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에는
글을 못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문 글쟁이를 빼고는 다 비슷했다.
지금보다 더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면 된다.
작가도 그렇게 말했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2 (p.61 - 62) <글쓰기의 철칙>
글쓰기에는 비법이나 왕도가 없다.
(중략)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태어난 사람이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상속자든,
글쓰기를 할 때는 만인이 평등하다.
잘 쓰고 싶다면 누구나, 해야 할 만큼의 수고를 해야 하고
써야할 만큼의 시간을 써야한다.
글쓰기에는 철칙(鐵則)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뭐든 노력없이 그저 얻어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많이 읽고, 많이 써보기만 하면
글쓰기 실력이 늘 수 있다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세상에는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일이 많은데 말이다.
#3 (p.91)
글은 지식과 철학을 자랑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내면을 표현하고 타인과 교감하려고 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화려한 문장을 쓴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다가서야 훌륭한 글이다.
#4 (p.175)
가수이자 제작자인 박진영씨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말하듯이 노래하라’고 충고한다.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지키면서 고음을 시원하게 내고
어려운 멜로디를 능숙하게 처리한 참가자를 탈락시키면서
노래실력을 자랑하러 나왔느냐고 야단친다.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노래를 잘해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멋진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기만 하면 최소한 못나지 않은 글은 쓸 수 있다.
나는 기교만 있는 글 보다는
마음이 담긴 소탈한 글을 더 좋아한다.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 =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보면 보상만을 위해서 쓴 것인지
글자체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진심을 담아서 쓴 글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 글은 보상이 적어 가치가 없는 글,
못쓴 글이라고 낮게 평가하지 말자.
#5 (p.116, 119) <말이 글보다 먼저다>
아직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이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한다.
말 못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중략) 따라서 반쪽짜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찌찌’‘때때’‘응가’같은 반쪽짜리 말을 가르치고,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부모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아이의 뇌는 쉬운 숙제를 받은 학생처럼 느긋해진다.
(중략) 아이가 언어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말을 정확하게 해야한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우리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 공부를 새로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육아에 대한 내용도 나와서 반가웠다.
동화책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읽어주면 좋다고는 했었는데,
‘얘가 뭐 알아듣겠어?’라며
귀찮아서 잘 안읽어 줬었다.
오늘부터라도 한권씩이라도 읽어줘야겠다.
#6 (p.260, 264) <사는 만큼 쓴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7 (p.271)
나는 글쓰기가 힘들 때 그렇게 상상하면서 행운에 감사한다.
우리 세대는 국가, 정부, 사회, 정의, 평등, 민주주의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중대 범죄가 되는 세상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
나는 스물아홉 살이 되어서야 말할 자유, 글 쓸 자유를 얻었다.
이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행운을 손에 넣고도
그게 행운인 줄 모른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다른 것을 찾으려고 몸부림 친다.
그렇게 살면서 자신과 타인을 괴롭힌다.
행운을 행운으로 알고 자기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면
삶이 훨씬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모른다.
글을 쓸 자유도 바로 그런 행운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스팀잇을 하면서부터 글을 쓰는 것이,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읽고
정성스럽게 써준 댓글들 덕에
더 즐거워졌다는 생각을 한다.
#7의 글처럼 스팀잇에 글을 쓰고
보상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운일지 모른다.
남과 비교해서 내 보상이 적다고 슬퍼하지 말자.
꼭 고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보상만을 목적에 둔 소통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의 진심어린 소통을 하다보면
보상은 자연히 따라오지 않을까.
작가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두 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정도 읽어보기를 권한 책이 있다.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아래의 책을 참고하길 바란다.
박경리 <토지>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