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그러게 말이다...
왜 그럴까?
이제는 좀 무덤덤해지고 싶다..
#1 (p.48) <남에게만 잘하고 자신에겐 소홀한 당신>
당신이 뭔가 부탁하기에 편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당신을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하거나 원치 않는 일까지도 당신 몫이 될 수 있다.
또한 당신이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간주되면
그 누구도 당신의 개인적인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 글귀를 읽으며 마지막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누구도 당신의 개인적인 감정 따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생각 때문에
남들이 하는 부탁이라면 거절을 못하고
다 들어줬던 것 같다.
더군다나 친하지 않은 사람의 부탁이라면
더 들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왜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도 사실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은 잘 못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거절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서,
거절해도 상대방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마음이 시키지 않은 것에는
거절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상대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서
나를 험담하거나 안 좋게 보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다른 일로도 안보게 될 사람일테니까.
-> (p.52)
적절한 희생과 양보는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이세상에 자기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와야하는 사람이나 일이란 없다.
그런데도 타인의 마음 아래 엎드린 채
눈치를 살피며 환심을 사려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자기희생뿐이다.
타인에 의해, 그리고 자의에 의해
암묵적이고 습관적으로 강요되는 영원한 자기희생 말이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다른 이를 위해 너무 많이 베풀기보다 스스로를 위해 베풀어라.
#2 (p.116) <타인과 세상을 보는 태도의 문제>
올리고 싶은 게시물이 있으면 마음껏 올리고
공유하고 싶으면 공유하자.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진짜 친구라면
당신의 일상에서 사소한 것까지도 알고 싶어할 테지만,
당신을 지적하고 흠집을 내려고 맘먹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어떤 내용을 게시하든 그 입을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스팀잇을 하다보면
‘나만 공감가는 사소한 일상글을 써도 될까?’,
‘숨쉬는 글이라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마음가는대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은
항상 달아줄 것이고,
내 글에 공감을 못하는 사람은
그냥 창을 닫을 테니까..
그러니 여기에 무슨 글을 써야할지
고민하지 말고
내가 진심으로 쓰고 싶은 글을 쓰자.
보상을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글을 씀으로 인해 글쓰기 실력이 늘고,
더불어 단 한사람이라도
내가 쓴 글을 보고 공감까지 해준다면
참 감사한 일이 아닐까?
#3 (p.119)(p.126) <내성적이어서 다행이다.>
내성적인 사람에게도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고,
내성적인 사람만이 가지는 장점도 있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고차원적이고도 복잡한 생명체를
좁은 시각으로만 판단,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어차피 내성적, 외향적이라는 것은 성격의 특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누군가의 역량을 평가할 때 쓰이는 잣대가
비단 이 두 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 내성적이라고 판단되면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는 것은 어떨까?
즉, 자신이 좀 예민하다고 여겨지면 내면의 섬세함에 주목하고,
유약하다고 느껴질 때는 내면의 부드러움을 높이 평가하며,
우유부단하다고 생각될 때는 신중함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항상 외향적인 사람을 동경해왔다.
내가 봤던 외향적인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참 잘 지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내성적인 성격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조차도 좋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참 바꾸고 싶었다.
내성적인 성격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좋은 면도 분명 있다는 것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
이 글귀를 보고 진작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4 (p.181)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방법>
언젠가는 제 진짜 삶이 꽃을 피우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어요.
그런데 늘 그것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있었죠.
해결하지 못하고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나
갚지 못한 돈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다 해결되어야만 진짜 제 삶이 시작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결국 저는 알게되었어요.
그런 장애물들조차 바로 제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방법>
4가지 중 네 번째 방법,
“이제 당신은 상처와 함께 살아내야 한다.”가
마음에 와 닿았다.
작가는
어린시절에 불행한 일을 겪었고
그 일이 당신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당신이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우울해지고 기분이 침체된다면
이 또한 정상적인 반응이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
(중략) 설령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하지 못했다 해도
누구나 상처와 공존할 수 있다.
라고 말을 해주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어린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은 유은정 선생님의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라는
책의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고민만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곡을 콕 찔러 시원하게 얘기를 해준다.
사이다 같으면서도
작가의 말을 인정하면 할수록
내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느낌까지도 들었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책을 읽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님에도 참 격공하며 읽었다.
어디에나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가보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떤 문제에 대해
나만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
자책하거나 우울해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