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로 위장한 억압과 Big brother

garden.park(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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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네이버는 검색 결과를 출력하는 방식이 다르다. 네이버는 인위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구글은 어떤 검색어에도 (이것을 모든 검색어에 해당한다고 내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시스템에 순응한 결과를 웹 페이지에 표현한다. 네이버에서 기사 삭제니 댓글 조작이니 하는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뉴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종이 신문을 봤다. 기숙사 생활을 해서 신문이 종류별로 있었기에 친구들 것까지 읽어 보곤 했다. 현재 네이버 뉴스는 그 시절보다 훨씬 많아진 언론사의 기사들을 전부 클릭만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편리는 내가 조선일보로 기사를 읽고 곧바로 한겨레 신문을 펴서 같은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 볼 때와 같은 '사고와 의심의 자유', '의구심과 그 것을 해결 할 의도'를 사람들이 가질 수 있게 하는가?

네이버에는 뉴스 순위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눌러 본 기사, 댓글이 많은 기사, 공유가 많이 된 기사 등이 수치로 집계되어 있다. 대체 그 순위에 들어 간 기사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릇 글이란 것은 아무리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적어도 작자의 의도란 것이 담긴다. 큰 사건에 대한 한 줄 짜리 속보는 예외로 치자. 사건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만을 파악하는 용도가 아니라 순위 안의 기사를 눌러서 읽고 (내가 알기로는 제대로 읽지 않고 댓글 란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 베스트 댓글로 사고의 방향을 정한다. 물론 찬성이나 반대겠지.

그것이 문제이다. 관점의 흑백화, 하나 보태자면 회색도 있다. 해당 사안에 별 관심 없는 사람.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 고용자와 피고용자, 유산자와 무산자. 세상의 모든 가치와 문제들을 두 꼭지로 단순화 시키고 관점이 다양성을 상실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결론 내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내가 신문을 읽던 시절엔 지금처럼 세상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않았지만 조선일보를 읽어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부분과 위화감이 드는 부분이 공존했고 한겨레를 읽어도 그 느낌들은 마찬가지였다. 한 쪽에 대한 선택과 무조건적인 수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은 엄지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자신의 생각을 단순화 시키기에 아주 좋은 시대가 되었다. e커머스에서는 내가 한 번이라도 구매한 상품과 또는 클릭했던 물품을 추천해주고 SNS에서도 나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여 페이지나 상품을 보여준다. 터치 몇 번을 줄일 수 있어서 편리한가? 내 취향을 저격해 주어서 행복한가?

모두가 자유란 말을 쉽게 입에 담고 그것을 누리는 일이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인식하면서 갑에게 당하면 자유를 박탈 당한 것으로 여겨 억울해 하고 '편리로 위장한 자유의 억압'은 환영하는가? 더 많은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박탈, 내 취향을 더 숙고해 볼 기회의 봉쇄, 제대로 알기 위한 능동이 기술의 발전이 주는 편리에 대한 부적응으로 격하당하는 세태에 대해 고민한다. 지식의 나열을 관람하는 일에 의미가 있지 않고 '단편의 지식과 하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 지적 판단력'과 '편향될 수는 있되 편협하지 않은 지적 수용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은 안다고 생각 하는 것의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편리에 익숙해질수록 세상이 열린 이래로 가장 간편하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이 시대의 기능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시간이 더 흐르면 그 기능은 몇몇에 의해 독점될 지도 모른다. 물론 각 개인이 관심있고 필요한 영역에 대해서는 기능 활용을 멈추지 않겠지만 그 관심과 필요의 분야 역시 기능의 발전과 반비례하고 있다.

자극적인 단어, 선정적인 이미지에만 트래픽이 몰린다면 우리는 너무도 통제하기 쉬운 IT 시대의 노예가 될 것이고 스스로 빅브라더를 만들어 가는 꼴이 된다. 찾을 수 있어도 찾지 않는 진실은 계속 파 묻히고 통제자들이 보여주는 틀 안에서만 백가쟁명할 것이며 레시피 동영상, 비키니 수영복, 헬스 보충제, 여행용 캐리어, 반려견 짤방만 눌러대며 소비 성향을 비롯한 수많은 개인 정보만 흘리고 다닐테니 말이다.

나는 세상이 충분히 편리하다고 느낀다. 스마트 시티, 자율 주행차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010시대에 017과 016은 원치 않아도 그 번호를 빼았겼듯, 내가 원치 않아도 세상은 변해간다. 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면 변치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 그건 사람이다. 인간성은, 개성은, 인성은, 자유를 향한 갈망은, 자유의지는 언제나 그대로여야 하고 그건 보존되는 것이 아니고 지켜내야만 하는 것들이다.big brother.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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