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harina Blum과 언론, 그리고 폭력

euiji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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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가. 즉, 지리적인 장벽을 뛰어넘은 무수한 정보와 시간적인 한계를 극복한 방대한 지식이 흘러넘치는 현대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얻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단연코 언론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어떤 정보의 진위여부에 대해 올바로 또는 의식적으로 물음을 제기하며 살아가는가.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거나 혹은 자신과 깊이 관련이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언론에서 보여주는 어떤 정보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모두 매체에 의해 매개된 것들이며,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거짓된 사실의 정보를 여과 없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면 이런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언론이 헤드라인, 사진, 그리고 기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조작하여 한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폭력을 저지른다면, 그 개인에 대해 집단적 대중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그 개인의 삶은 어떻게, 또 얼마나 파괴될 것인가. Heinrich Boll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미디어가 우리에게 일으킬 수 있는 해악에 관한 책이자 지금 현재에도, 언론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범죄 혹은 폭력에 관한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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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 : 헤드라인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하여.

  • 때는 1970년대 당시 독일에서는 두 폭력 사건이 일어난다. 카타리나 블룸은 경찰을 찾아가 (무덤덤하게)자신이 한 기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자수한다.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정치적으로 어지럽던 상황, 또 신문과 라디오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보 전달 매체가 없던 시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카타리나 블룸이며 그녀는 스물일곱의 젊은 이혼녀다. 그녀는 지극히 성실하고 양심적이며, 자신의 일에는 빈틈이 없는 유능한 가정 관리사다. 블룸의 집안이 조금 불행하다는 것을 빼면,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성임은 분명하다. 혼자 힘으로 그럭저럭 타고 다닐만한 자동차와 남부럽지 않을 아파트까지 마련했고, 주변에 그녀를 신뢰하고 위해주는 다정한 지인들도 있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여성이다.

독일의 카니발 시즌, 그녀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고 있었음은 아마 몰랐으리라!

  • 블룸은 예정되어 있던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사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괴텐은 은행 강도이자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였고, 언론과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 파티 내내 그 사내와 진심으로 춤을 추고, 그의 다정함에 매료되어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사실 블룸이 괴텐과 접촉한 시점부터 경찰의 완전한 감시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도청과 수색, 그리고 수치스러운 심문이 이어졌고, '차이퉁'이라는 독일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보수 신문의 희생자가 된다. '차이퉁'은 블룸에 관한 기사를 전면적으로 1면에 보도하고, 온갖 과장과 누락, 그리고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그 신문은 이미 카타리나가 용의자라도 된 것처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권유린을 가했다. '차이퉁'에 의해 그녀의 가족은 전 국민에게 모든 정보가 벌거벗겨 졌고, 빨갱이로 전락했다. 그녀의 영리함은 간사함으로 치부되고, '다정함'을 사랑하는 여성적인 면모는 창녀처럼 묘사되었다. 그녀의 친척과 친구들에 관한 기사가 나면서, 이들의 사업이 하나하나 실패하거나 큰 재산을 잃었다.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이 또한 모두 파괴되었다. 심지어는 '차이퉁'의 기자 때문에 블룸의 어머니는 사망까지 하게 된다.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카타리나 블룸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차이퉁이 독일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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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을 오염시키는 자들이 진정한 언론일까?

2. 폭력 : 그것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 차이퉁이 언론의 자유란 흉기를 통해 개인의 권리를 짓밟고, 블룸의 삶을 파괴하려는 무참한 폭력 앞에서 그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철저히 무력하고, 완벽한 서발턴(Subaltern)이다.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곳은 없고, 갖은 언론의 폭력 앞에서 그녀는 무력하기에 총으로 기자를 쏴 죽이는 이 방법 외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차이퉁은 카타리나에 대해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차이퉁의 '무지'로 인해 발생한 카타리나에 대한 폭력은, 살인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고 새로운 폭력은 또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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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말이 다른 사람말보다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 차이퉁이 저지른 폭력, 이것은 지금 이 시대에 아주 쉽고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대중이 보기에)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동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인터넷에 공개되면, 그 사람에 대한 신상정보도 삽시간에 공개되고, 수없는 비방과 욕설이 난무한다. 결국 그 사람은 카타리나 블룸처럼 '원래 그런 사람'으로 대중에게 알려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인성, 품성 등 모든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도 않다.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무지 속에서, 그의 심장을 도려낼 칼을 꺼낸다. 또 우리가 저지르는 폭력이 왜 그리고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무지함, 이것이 끝없는 폭력을 양산한다.

3. 반성 : 주어진 것이 아닌 내 스스로 하는 생각을 위해

  • 언론이라는 (과격한)지식집단은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해야하는 목적과 사명감을 갖고 있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방식으로 가공하고 때로는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실을 왜곡하곤 한다. 우리는 그들이 보도하는 정보를 통해, 나와 타인, 그리고 그런 관계,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믿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언론이 주는 해악은 상당히 치명적이다.

언론을 비방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우리 시대에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아주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블룸이 살았던 1970년대처럼, 모든 정보가 '차이퉁'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신문에 의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매체를 여럿 접하곤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는 어떤 정보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기 힘들어지며, 그럴수록 매체가 주는 정보의 사실관계를 의심치 않거나, 그 정보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이때까지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에서 쏘아 주는 모든 정보는 그 자체로 사실적이고, 믿을 만한 것들이라고 느끼며, 그것이 내 생각인양 이해했다. 또 무수히 모니터 앞에서 범했던 '무지'에서 비롯된 타인에 대한 폭력도 셀 수 없이 많이 저질렀다. 카타리나 블룸, 그 가여운 여성의 피해를 보며, 어쩌면 언론은 필요악의 존재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블룸의 피해를 보며, 적어도 이제는 제대로 된 의식적인 사고를 하고, 언론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생각을 할 기회를 얻을 것 같아 약간의 위안을 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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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매체에 길들여지면 사유의 힘은 죽어버린다.

  • 언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해악에 대해 다시 생각할 일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생각이라고 자부할 수 있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똑바로 바라보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기 위해. 그리고 폭력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 카타리나 블룸과 같은 무고한 희생자가 또 다시 나오지 않아야 하기에, 그리고 우리가 저지른 무수한 폭력이 종식되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기에. 어떤 곳에서든 더 이상 차이퉁과 같은 과격한 지식집단이 나오질 않길 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모두 기억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시민을 위한 것임을.


참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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