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다 지웠다.
00부터 시작했는데 01부터 10까지는 채워야 할 것 같은데 쓰다 보면 해 뜰 때 까지 쓸 것 같다. 그래서 썼던 걸 다 지웠다. 며칠 전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반쪽짜리 얼굴이었지만 누가 알아볼 까봐 겁났다. 여기는 나만의 공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동창을 만난 것 같았다. 너무 놀랐다. 다행인 것은 그 사람과 나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침대 맡에서 꺼낸 나의 졸업 앨범에서 그를 확인하니 확신이 들었다. 맞구나.
그 기분은 오묘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신기하면서도, 무섭고도, 반갑고도, 또 다시 무섭고도, 반가운 마음이었다. 익명성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을까 하는 마음과,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겹쳤다.
동창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는 사이였다. 뭐, 나는 같은 반이었던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동창과 더블백을 메고 이병 ooo입니다, 하며 같은 내무실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다. 신병이었던 그때 전입 신고를 처음 한 날, 침상 맞은 편에서 일석점호를 받던 그 친구와의 눈 마주침이 불편하면서도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군대 후임과는 같이 휴가를 나가는데 군 부대 근처 터미널에서부터 동서울 터미널까지, 그리고, 같은 라인의 지하철에 같은 역에서 내리니, 왜 자꾸 따라오냐 물었더니, 이 동네가 내 동네야, 했던 기억도 있다. 위병소 나올 때는 oo병장님이더니 동네 오니 반말이냐...
와이파이도 열차에서 나누는 사이라는 걸 보니 세상 정말 좁다 싶다.
이곳에서 그를 '그' 대로 알아봤을 때, 나는 그의 고딩 시절을 알 수가 없다. '니가 여기 왜 있어?' 같은 느낌이지만 또 달랐다. 또 다른 친구에게 소개 받아 여기로 왔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그 친구와 왕래가 없었다. 그 만큼 숨기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고딩시절, 잘 알지도 못 한 친하지도 않았던, 지금에서야 그 사람이 내 동창인 걸 안 순간, 내 터널의 어둠을 들킨 것 같아 식은땀이 났다. 뭘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동네에서, 몇 번은 마주쳤을텐데, 뭘 잘 못하지는 않았겟지? 왜 내가 걱정하지...? 전 창 밖의 맨 뒷자리에서 밖을 봐라보며 계절이 언제지날까, 교과서를 베개 삼아 잠만 자던 자발적 아싸였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나로 눈치챌 수도 없겠지만, 그 사람이 나를 알더라도 여기서는 모른척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을 알지만, 그 사람은 나를 모를 것이다.
반쪽짜리 프사였어도 알 만 친구는 눈만 봐도 다 아니까. ㅎㅎㅎㅎㅎㅎㅎ
10년 전 넓디 넓은 막사에서 처음 만나 한 방에서 치고 박고 싸우던 oo이가 아직까지 나를 찾아주는데 형은 아직 너와, 옆에서 코를 골던 선임이지만 동생같던 oo이와, 내가 좋아해서 자기 전까지 괴롭히던 oo이와 마주 할 그 어떤 것을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 그 시절 니가 느끼던 그 형과는 다르지?
다음에 보자, 소대본부 동생들아.
요사이 안 그래도 혼자이지만 더 혼자 있고 싶었는데, 나로서는 감당 못 할 연락이 많이 왔다.
며칠 전 오랜만에 외롭다고 아프다고 한 친구가 만들어 낸 만남에서, 내가 그랬나보다, 난 더 아프다고. 나를 자주 만나는 나를 잘 아는 친구가 그랬다. 아픈 사람은 아프다고 이야기 안 한다고. 그 말이 더 아팠다. 맞다, 내가 덜 아픈 것이다. 나를 너무 잘 안다.
몇 줄 적는다고 단편은 알 수가 없다. 그 단편을 장편을 쓸 수도 없다. 나를 너무 잘 안다는 말이 단편이자 장편이다.
연락해준 소대본부, 군대 동생에게 보답을 못 해 더 아팠다.
몇 일 간 악목을 꿨는데 오늘은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
이 터널 끝에 빛을 만날 그 친구와의 만남도 언젠가는 기약하며.
역시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