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한지 햇수로 6년차인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지난 시간 중에서 이번 일주일이 가장 지옥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8~2020년의 하락장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나름 멘탈 훈련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동안은 멘탈 회복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먼저 혹시라도 그 동안 제 글을 보시고 루나 또는 루나 관련 댑토큰들에 투자를 하셨다가 피해를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봤다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와 여러 리스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겨우 정신을 좀 차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도록 제 스스로의 거울을 다시 한 번 보고 반성하기 위해 그리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몇 글자 끄적여봅니다.
탈중앙화된 생태계에는 탈중앙화된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는 테라의 슬로건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분명한 테마와 목표를 가지고 개발이 진행되는 점, 차이 카드라는 현실에 사용가능한 실제 프로덕트의 출시를 보며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LUNA 투자를 시작했었습니다. 워낙 토큰 런칭 후 계속되는 크립토 베어 마켓 분위기의 한 가운데이기도 했고, 꽤 오랜 시간 모아온 덕분에 참 운이 좋게 소위 낮은 가격에서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TA에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장기적으로 수량을 모아가는 투자 방식을 선택했고, 덕분에 특히 LUNA에서 엄청난 (미실현) 수익을 얻을 수 있었네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몇 가지 강력한 위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며 방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비극을 초래한 원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이너스 예대마진으로는 실현불가능한 수준의 이자율을 지급하던 재원은 전형적인 폰지방식으로 설계됨
이자지급 재원은 이미 고갈된 바 있고, 다른 보완방식 없이 계속 고갈되어 가고 있었음
그 와중에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라이벌 카피캣이 등장하며 잠재적 이탈 유동성 증가
1달러 페깅이 상방 캡이 되는 알고 스테이블코인의 무기한 선물은 숏 포지션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음
대표의 오너 리스크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음 (다른 프로젝트 비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용자 비난, 1년 뒤 가격을 가지고 베팅 내기 등)
공격을 받을 경우 취약점이 될 수 있는 정보들을 과도하게 공개 (LFG의 비트코인 보유 수량, 커브 풀 유동성 일시 제거 등)
거래소의 UST 현물 및 선물 상장은 방어해야 할 곳이 더 많아지는 취약 요소로 작용 가능
Death Spiral이 일어났을 때 발생가능한 스노볼 이펙트
한 체인 생태계 내에서의 포트폴리오 분산은 절대적으로 분산 효과가 없고, 실제 현금이 아닌 크립토(스테이블코인) 형태의 보유는 현금화가 아니며, 포트폴리오 비중 조절은 최초에 세워놓은 원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떨어지는 칼날은 일단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모든 것들을 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냉철한 관점과 자세를 유지하시며 여러가지 가설을 세우고 리스크 관리를 하며 빅쇼트 플랜을 준비하셨던 분의 글을 읽어보면서 얼마나 스스로가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네요.
최근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내용들을 보고 있자면 2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카리스마 리더십을 보여주려했던 것이든, 초심을 잃었던 것이든) 도권의 건방이 심해졌던 어느 무렵부터 TFL과 LUNAtics(루나 투자자들)에게는 적이 참 많아졌던 것 같은데요, LUNA 또는 UST를 들고 있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된 분들이 조롱이나 놀림의 대상이 되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다같이 디지털자산에 투자를 하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반려자, 자녀이자 이웃이고 충분히 감당하기 벅찬 큰 고통을 느끼고 계실겁니다. "나도 루나 좀 사봤어 힘 내, 그러게 이런 폰지 설계된 것을 왜 몰랐어, 누군가 폭풍 거지될 때 나는 따리로 개이득" 이런 말들이 더 큰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들도 들리고 있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던 개인들과 VC, 테라에서 프로젝트를 운영했던, 그리고 운영을 준비 중이던 많은 분들께도 2차, 3차 피해가 발생 중인데 이는 암호화폐 투자 중인 우리 모두가 같이 감당해야 되고 감당하게 될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루나발 디지털자산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암호화폐는 역시 사기다" 또는 "사기꾼과 투기꾼들이 가득한 곳이다"는 잘못된 프레임으로 다시 갇히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매크로 분위기 속에서 디지털 자산 시장과 해당 산업 종사자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