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몇 가지 예능 프로를 즐겨보는데, 거기에 "불타는 청춘 (이하 불청)"은 애청 목록에 없다. 불청이 막 시작하였던 몇 년 전에 조금 보다가 아재/아지매들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별로 재미 없어서 접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터널 끝의 빛 (이하 이터빛)"님의 글을 보고나서 든 생각이었다.
초반에, 후각을 잃었는데도 요리를 곧 잘 해내는 홍석천씨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구본승씨의 데뷔 당시 "건방진" 춤사위도 반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별밤의 테마송(?)이 좋았다. 당시 내가 특히 좋아하던 "별밤 창작 극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공일오비는... 테잎으로, 라디오로 들었을 때 그렇게 세련된 음악인데 왜 그들의 무대는 그렇게 저질스런 깨방정 골반댄스가... 물론 이번 편 불청의 클라이막스는 그 이후에 나오는데,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굳이 내가 뭐라 평을 남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터빛님의 글을 보고 기대했던 내용, 그 내용 면에서 이번 불청 에피소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 만족감과 동시에 어떤 불편한 느낌이 컸다. 거기 나오는 출연진들. 그 분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불편했고, 보기 싫었다. 그들의 나이든 얼굴, 주름진 얼굴, 그 얼굴을 보는 게 (약간) 고통스러웠다.
구본승, 김혜림, 김부용, 최성국...
나는 거기 나온 출연진들 거의 모두의 전성기를 기억한다. 가수와 노래로 국한시키자면, 이번 불청 에피소드에 등장한 노래들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대학 초기에 이르기까지 티비와 라디오를 통해 보고 들었던 노래들이었다. 나는 그 가수들이 무대에 섰던 모습을 내 머리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수들이 은퇴한 후 소식이 끊겼으니, 내 머리 속의 그들은 여전히 그 때의 모습에 머물러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내 부모님도 늙으셨고, 나도 늙고 있다. 그런데 왜 난 내 어릴 적 스타들의 나이듦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아침에 이빨 닦으며 거울 속의 나를 본다. 탄력 없는 피부. 표정을 따라 그어진 주름 자국. 몇 몇 흰머리. 나는 거울 속의 이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별 생각이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졸린 걸 못참고, 며칠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바로 감기에 걸리는 내 몸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다. 나이들었나 보다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이드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 들어 도태되는 게 두려운 것 같다. 가속화되는 망각 속도를 느낄 때, 20년 전 일은 생각나도 어제 일이 생각 안날 때, 간단한 것 같은 암산이 쉽게 안되어서 펜을 들어야 할 때, 내 무의식에는 두려움이 쌓이고 있는 것 같다. 연구소에서 나보다 한 20년 정도 연상인, 잘나가는 연구자들을 보면서, 당장 몇 년 후 내 미래조차 보장이 없는데, 점점 머리도 굳어가는 내가 과연 10년 20년을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마음 속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이듦"에 대하여 대항하고 있기에 퇴행성 관절 질환 (D.D.D.; 불청 내용 참조)으로 고생하는 그 분들의 모습이 불편한 것 같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겠나.
받아들여야겠지.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결국 그렇게 되겠지.
다만 그 때 까지 웬만해선 불청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ps1. 고물님의 "감정 돌아보기" 시리지를 읽다보니 저도 제 감정을 마주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ps2. 분명 이 글을 보는 많은 스티미안 분 들 중에 저보다 나이 많은 분 들 계실텐데... 그냥 아직 미숙한 젊은이(?)려니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