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증권거래소의 주식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Charles Strickland)는
마땅한 취미 하나 없던 따분한 남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사라졌을 때,
많은 이들은 기껏해야 그가 정부(情婦)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을 거라 수군거렸습니다.
그를 찾아 파리까지 쫓아온 ‘나’에게
스트릭랜드는 런던을 떠난 이유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였다고
덤덤하게 말합니다.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나’는 현실적인 한계와
이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지적하며
승산 없는 도박이라고 답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스트릭랜드는
‘나’에게 답답하다는 듯 일갈합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단 말이오.
당신은 물에 빠진 사람한테 헤엄을 잘 치느냐고 묻소?
물에 빠진 사람은 그곳에서 나오기 위해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는 거요.
그렇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달과 6펜스 최고의 명대사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의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는
예술과 일상의 공존에 대하여 가혹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얗게 반짝이고 동그랗지만
‘달’과 ‘6펜스’는 모든 면에서 대비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적 광기와
현실세계의 흔한 물질적 재화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처럼 보이지요.
찰스 스트릭랜드는 나병에 걸려
살이 썩어 문드러지고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처절한 예술혼을 불사릅니다.
섬머싯 몸의 달과 6펜스, 1942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을 본 닥터 쿠트라(Dr. Coutras)는
그 그림에서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꼈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신의 점지를 받은 천재는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붕괴되고,
가정은 파탄 났으며, 건강은 악화되었죠.
아무리 예술이 가치중립적이라지만,
극중 스트릭랜드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미치광이의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가끔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일 때면,
스트릭랜드가 말한 물에 빠진 사람의 절박함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가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작품에 몰입하는
예술혼만이 진짜 같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태도는
가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모든 예술에 한 가지 방법,
한 가지 길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
불필요한 위악을 떠는 것 또한 분명 다른 일이지요.
위대한 예술혼을 부르짖는 사람 중에는
스트릭랜드 같은 ‘진짜’도 있지만,
자기기만에 빠져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가짜’도 많으니까요.
이런 류의 예술가 느낌이랄까
다행히 소설시장은
‘예술혼을 불태운 위대한 작가’에게만 개방된 곳은
아닌 듯합니다.
다른 예술영역에 비해 순혈주의에 대한 고집,
정통 작풍에 대한 완고함이 덜하다고나 할까요.
천재적 광기가 돋보이는 작가도,
우직한 끈기가 강점인 작가도
자기만의 색깔로 글을 쓰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을 뿐입니다.
수상쩍을 정도로 모든 이에게 공개된
경기장 같은 느낌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역시 소설가를
‘직업에서의 영역 배타성 측면에서
남다른 포용력이 있는 인종’으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전혀 다른 직종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다 한들
소설가는 딱히 그들을 배척하거나
야유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소설가의 이런 개방적 특질은 아마
글쓰기의 노동집약적 특성 때문일 겁니다.
소설을 쓰다보면,
글쓰기는 ‘뮤즈(Muse)의 영역이라기보다
헤파이스토스(Hephaestus)의 영역’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되지요.
쾌지나 칭칭 나네! 야! 돌아! 돌아! 놀 수 있을 때 놀아야지!
아오! 일만 하려니 뒈지겄네! 야! 막내야! 가서 물 좀 떠와라!
소설가 장강명은 기자를 그만둔 후
전업 작가로 전향하면서
‘하루 8시간, 연간 2,200시간 글쓰기’ 원칙을 세우고
매일 스톱워치로 집필시간을 쟀다고 합니다.
일부러 한국인 연평균 노동시간(2,113시간)을
웃도는 기준을 설정하고,
직장인과 비슷한 호흡으로 작업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글쓰기는 집요함과 끈기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분들이기에 소설가라면,
소설 한 편을 완결한 이에게
‘일단 너의 그 끈기만큼은 높이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뼈아픈 비평
–수고는 했다만, 이 정도면 손으로
똥을 빚었다고 밖에 할 수 없어! 라든지– 은
별개의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맨손으로 똥덩어리를 빚느라 대단히 수고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