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누구를 위한 요리인가.

daegu(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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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삼계탕 한 그릇 만들기


여보, 기침이 심하네.
그렇지? 안 그래도 병원 갈까 싶었는데..
아니, 당신 말고 애 말이야. 그리고 요새 고기가 좀 부실해서.. 삼계탕 같은 거 어때?
사줄려고? 포장할 때 인삼주도 같이 달라 해..
아니, 당신이 좀 만들어 봐. 그 스티밋인가 블로그인가 올리기 좋겠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방해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응원자. 그리하여 아빠표 얼렁뚱땅 대충그냥 만드는 삼계탕 포스팅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집사람이 사다준 생닭과 황기, 냉장고에 있던 대추, 마늘, 인삼을 준비합니다. 여름에 삼계탕 끓일 때 인삼을 다 쓴 걸 깜빡했네요. 어쩔 수 없이 향은 덜 하지만 인삼없는 삼계탕을 만들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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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치킨이든 백숙이든 닭껍질을 참 좋아하는데 집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수요자 입맛에 맞춰야죠. 맛 없는 건 괜찮지만 껍질 있는 건 안된다는데. 껍질 벗기는데 칼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건 백종원 선생님이나 쓰는거지 집에서 뭐 대충 그냥 되는대로 만들기엔 가위로 충분합니다. 손으로 껍질을 좀 당긴 뒤에 눈에 기합 넣고 잠시 '닥터K'가 되어 가위를 메스 삼아 뱃가죽과 등가죽을 2등분 합니다. 저 닭날개 부분에 덜 벗겨진 가죽은 어쩌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닭이 팔토시 했다고 답하렵니다. 아... 팔토시? 8사토시? 12월초에 디지털노트 8사토시 할 때 좀 사둘껄. 업비트에서 오늘 399사토시네요. 그건 그거고 생닭은 이제 생닭몸통과 껍질로 하드포크됩니다. 생닭 1000g 당 껍질 100g 비율로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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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되었습니다. 냄비에 닭, 황기, 대추, 인삼, 마늘 대충 집어넣고 대충 물 채워서 불 켜고 뚜껑 닫아놓았다가 국물 색깔 변할 때쯤 먹으면 되겠죠. 여기서부터는 배고픈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뜯어보고 덜 익었으면 투덜거리면서 다시 불을 켤 것이고 다 익었으면 알아서 떠먹을 것이고. 국물이 뽀얗게 일어났으면 삼계탕이 될 것이고, 졸아들어서누렇게 되었으면 닭백숙이 될 것이고. 그런데 제가 삼계탕인지 닭백숙인지를 끓일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닭 껍질입니다. 다 끓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한 줌 닭껍질로 나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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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본 여행 가서 메뉴판 마음대로 짚으며 되는대로 마구 주문을 하다가 우연히 닭껍질을 먹어봤는데 아직 그 맛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아직도 생닭만 보면 그 껍질구이 맛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그리움을 재료삼아 닭껍질을 구워봅니다. 불에 달궈진 팬 위의 닭 껍데기에서 무한정 기름을 채굴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POW 방식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거의 튀김에 가까운 상태가 되면 소금을 뿌리고 팽이버섯이나 생마늘 등을 투척합니다. 닭기름에 튀긴 마늘과 버섯. 아아 또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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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선 계속 후라이팬과 가스레인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집사람은 아이와 씨름하면서도 내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삼계탕이야 익거나 말거나 맥주캔을 따서 잠시 쇼섕크 옥상의 앤디듀프레인이 되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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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사람은 아이와 씨름하며 닭을 먹일 시간이고, 저는 '아이고 오랜만에 주방에 서 있었더니 힘들다'며 먼산 한 번 쳐다보고 침대에 누워 폰을 만질 시간입니다. 밥 시간이 길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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