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진없이 쓰는 멋대로 번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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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부계정을 갖고 있다. 사실 그 계정이 먼저 만들어진 계정이다. 처음에 스티밋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생각이 서지 않았을 때, 시덥잖은 글을 두어개 올리고 반응이 영 좋지 않아 그냥 두었던 계정이다. 너댓개 쓴 글에 대한 보팅 수익은 대충 $0.02~$0.04였고 댓글은 거의 없었다. 흥미를 잃고 몇 개월정도 스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뭐든간에 타인의 반응이 고픈사람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뭔가 쓰고 싶어져서 새로 가입한 게 이 계정이다. 스티밋에 일기장 대용으로, daegu@daegu 계정으로 쓴 글들은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참에 생활글이나 일기글만 계속 올리자고 생각했다.

  2. 좀 지나서 코인에 대한 글도 쓰고 싶었다. 나는 코인계에서 -96% 정도의 수익을 자랑하는 코인계의 대표 흑우였던데다가 코인에 대해 멋지고 힘 있게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 데리고 여행갔던 글이나 사진이나 올리다가 뜬금없이 코인글을 쓰면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버려두었던 옛 계정으로 알트코인에 대한 글들을 조금 썼다. 짱짱맨 태그를 쓰지 않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어쩌다보니 명성도도 제법 높아졌고 신규유저를 위한 지원 개념인 짱짱맨을 내가 쓰는 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신기하게도 두 계정에 각기 다른 팔로워가 붙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코인글을 쓰는 계정에는 코인이야기를 주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주었고 일기를 쓰는 글에는 일기 쓰는 사람들이 찾아와주었다. 가끔 이 계정으로 로그인하여 저 계정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주는 실수도 했다. 아차하면서 얼른 지우긴 했지만 아시는 분은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

  4. 시간이 더 지나서 글 쓰기가 싫어졌다. 뭐라도 하나 쓰려면 읽을꺼리도 없는 글이지만 서너시간씩 걸렸다. 시간도 나지 않고 이래쓰나 저래쓰나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두 계정 모두 한 달 정도 버려두고 스티밋에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글은 올리지 않았지만 스티밋에서 먹스팀이 한참 뜰 때, 혹시나 싶어서 찍어둔 식당 사진이 쌓이기 시작했다. 폰은 부족한 용량에 대한 경고를 계속 울려댔다. 그냥 지우긴 아까운데..

  5. 두 계정 모두 내가 쓴 테이스팀 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좀 보기가 싫다. 처음 목표는 코인글 쓰는 계정 하나, 생활글 쓰는 계정하나였는데 둘다 식당사진만 올라오니 이제 테이스팀 글을 줄여야하나, 아니면 이걸 희석하기 위해 다른 글들을 추가로 더 써야하나. 여행이나 나들이 사진은 한 보따리 가득인데 정리해서 올리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6. 요즘 알라딘 중고서점을 자주 찾는다. 아이 책도 사고, 내 책도 사고. 나는 주로 일본작가가 쓴 책을 산다. 오다가다 줏어들은 제목이나 작가명이 저절로 떠오른 탓이 클 것이다. 무라카미 소설의 첫부분은 재미있는데 항상 마무리 부분에서 이게 뭥미?하는 느낌이다. 얼마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샀다. 아프니까 청춘 어쩌고 책들의 반값이었다. 이제는 청춘이 아니라서 몸 여기저기가 쑤신탓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파서 청춘이 아니고, 청춘이 아니라서 아픈거다. 병원에 가도 그냥 정상이라고만 한다. 낡은 중고차에 자잘한 고장이 나도 고치지 않고 타듯이, 그냥 그런 시기가 됐나보다.

  7. 연금저축을 포함해서 보험비로 매월 내는 돈이 60만원 가량 된다. 막상 병원에 가니 내가 가입한 보험으로는 아무것도 커버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내가 죽을병에 걸려서 보름쯤 입원해야만 보험비가 나오는 컨셉으로 보험이 설계되었다고 한다. 나는 나름 똑똑한 사람이라 아버지 지인, 내 친구, 지인의 지인, 호갱모집 광고전화에도 혹하지 않고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방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200건의 권유가 있었다면 196건을 막았으니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결국 가입한 4개의 보험이 지금의 내게는 별 쓸모가 없다. 호갱도 이런 호갱이 없다. 주변에 물어보니 보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갖가지 정보를 모으고 있다. 결혼 전에는 '아, 아프다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야.. 내가 아파서 죽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누워서 돈만 축내고 있으면 내 가족은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고보면 '10억을 받았습니다'로 시작하던 어그로성 보험 광고도 제법 잘 만든 편이라고 본다.

  8. 하늘 사진을 자주 찍는다. 찍어서 어디 보여줄 곳도 없고, 폰에 쓸모없이 용량만 차지하지만 맑은 하늘을 보면 저절로 폰을 꺼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나중에 보면 어느 시기에 날씨 좋은 날이 많았는지 대략 알 수 있다. 수년간 하늘사진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제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은 거의 끝났다고 본다. 조만간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내 코는 항상 삘삘거릴 것이고 따가운 눈을 달래려 하는 세수 때문에 출근길에 바른 로션은 점심시간 전에 물에 씻겨나갈 것이다.

  9. 쓰다 보니 더 쓰고 싶은데 이제 그만 쓰고 싶기도 하다. 90%정도는 어제 밤에 끄적거리던 글이다. 에버노트나 조터패드(욕 아님) 같은 어플로 생각날 때마다 뭘 써 놓으니 좋다. 꿈의 한 조각처럼 지나가는 잡생각을 붙잡아서 박제해 놓았다가, 기분에 맞게 꺼내쓰는 기분이다. 아, 이거 비지에서 올리면 보상 더 받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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