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는 아이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주말저녁의 산책코스 중 하나이다. 각종 동네 공원들이나 놀이터, 집 뒤의 산책로는 '날씨'라는 이름으로 미세먼지니 온도니 비 바람이니 하는 예측할 수 없는 기준에 의해 갈 수 있는 날과 갈 수 없는 날이 정해지는 것과는 달리, 마트는 '매월 둘째, 넷째주 일요일'이라는 예측가능하고 납득할 수 있는 날짜를 제외하고는 아무때나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두달 전에, 내가 자주 다니는 길의 가로등에 못 보던 광고 현수막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홈플러스의 새로운 시작' 정도 느낌의 광고문안이었던 것 같다.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당분간 문을 닫았던 마트의 개장 소식을 알리는 광고였다. 새로운 산책코스가 개발되었다는데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가게는 갈 때마다 손님보다는 직원이 더 많아 보이는 을씨년스러운 곳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하였다.
비오는 날이었나보다. 마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좁고 깊어서 소형차의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앉으면 놀이기구를 타는듯한 스릴도 즐길 수 있었다. 운전석에서는 레이싱게임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 혼자서는 이 마트를 오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힘을 숨기고 있던 주인공이 한 번 인상을 쓰면 적들이 모두 겁에 질려 덜덜 떠는, 만화의 흔한 장면이 떠오른다. 과연, 지금부터 근처의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벌벌 떨게 될 것인가.
마트를 찾았던 날이 평일 저녁시간이긴 했다. 입구가 더 훤해지고 통로가 더 넓어졌다. 바닥에도 광이 더 들어간 것 같다. 카트도 더 큰놈이 들어왔다. 트레이더스나 코스트코와 비슷한 분위기로 바꾸려는 시도인가보다.
클럽상품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기존에 비해 좀 더 대용량의 물건들로 보이고 '창고형'이라는 말까지 붙여놓으니 물건을 집어들기에 조금 더 부담스럽다. 광고판 속의 입은 실제 내 입보다 더 놀란듯하다. 난 하나도 안 놀랐는데.
홈인테리어 소품샵이 매장 안에 들어왔다. 아이가 농구골대를 보더니 저게 뭐야?라고 묻는다. 농구에 대해 설명하니 사달라고 조른다. 낭패다. 밖의 장난감 코너에 보이는 블럭과 인형 같은 것보다는 더 저렴할 것 같다는 생각에 농구골대를 하나 샀다. 집에 가져와서 보니 지지대에 물을 채워넣고 기둥을 박아넣고 기둥에 나사로 보드를 고정하는 방식인데 그냥그냥 그런 수준이다. 물건을 산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이는 지금까지 공을 여섯 번 정도 던진 것 같다. 거실에 덩그라니 서 있는 골대가 아까워 아이가 잠든 후에 내가 한 번씩 공을 던져본다.
통로가 넓어지고 잡동사니들은 홈인테리어 매장에 다 옮겨서 그런지 깔끔해보인다. 통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간이판매대가 없어졌다.
보통 카트를 마지막으로 채우는 건 초밥. 맥주와 초밥, 삼겹살과 안심스테이크용 쇠고기, 우유, 생수이다. 마트에 가면 주로 사는 물건들이다. 초밥코너가 좀 바뀌었길 기대했는데 리모델링 전과 변화가 없어서 좀 아쉽다. 나오는 길에 집사람이 화장품코너에서 아이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기에 나는 아이와 향수를 둘러보았다. 테스터 종이에 살짝 묻혀 코에 대 보고 어떤 향이 좋으냐고 물었다. 가끔은 찡그리기도 하고 과일냄새 같아서 좋다고도 하고, 처음 맡아보는 냄새라고도 했다. 병이 예뻐서 마음에 든다고도 했고 병이 못생겨서 싫다고도 했다.
지금은 이게 무슨 향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아이는 이 향을 좋아했고 그 자리에서 아이와 약속했다. 지금 쓰고 있는 향수가 바닥나거든 이걸로 사겠노라고. 지금 쓰고 있는 건 면세점에서 두 번에 걸쳐서 산 불가리 향수세트인데 안 바르는 것 보단 낫지만, 특별히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나는 아직 내 냄새를 찾지 못했다.
97년에 대구점에서 시작된 홈플러스,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한국자본이 소유했다고 하는데 2018년 중으로 총 160여개의 점포 중 20개 점포를 '스페셜'로 리모델링 한다고 한다. 변신이야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이왕 하는 거 매장 내에서 먹을 수 있는 피자나 불고기빵 같은 것도 좀 트레이더스나 코스트코처럼 열고 초밥코너도 좀 더 커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