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신입생 때 받았던 전화가 있다. 회상하면 혈압 올라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드는 이야기다.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다. 웬 아줌마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왜 우리 혜선이 건드렸냐? 왜 하지 말라는데 자꾸 집적대고 있냐? 너 정말 혼나볼래?”
라고 말했다. 쌍욕도 했다. 난 그저 황당했다. 그런 사람은 알지도 못했으니까. 전화 잘못 걸었다고 말씀 드렸다.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 말은 무시하며 핏대 세워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내가 2학년 1반의 동훈인걸 알고 있으며 자꾸 자기 딸을 건드리면 신고할 것이라 했다.
“전화 잘못 거셨고요, 저 대학생이에요.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하고 말했으나 이성적인 대응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같은 말만 반복했다. 우리 딸을 더 건들지 말고 그간의 행동을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옆에서는 아버지인 듯한 남자의 “그냥 신고해버려”라는 고함도 들렸다.
전화를 끊어 버렸다. 즉시 같은 전화가 왔다. 왜 전화를 끊느냐며 다시 욕을 했다. 나도 지지 않고 싸웠다. 그런 대화가 수십분 이어지다가, 내가 그 남학생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왜 어른한테 화를 내느냐며 사과하라고 했다. 말도 안됐다. 내가 피해자였다. 관계도 없는 생면부지 남을 파렴치한에 변태로 몰아 세운 그 아줌마가 사과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분이 절대 굽히지 않을 사람인걸 알았다. 난 더 이상 엮이기 싫어 먼저 사과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 관련 전화를 받은 적은 없다. 더 귀찮은 일은 없었다. 잘한 일이었을까 의문이 남는다.
사람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고 말한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모르겠다. 난 솔직히 똥이 무섭다.
내 손에 똥이 묻는 것이 겁난다. 냄새가 지워지지 않아 싫고, 병균이 옮을 것만 같다. 더러움은 질병으로도 연결된다. 똥물에 빠지면 똥독이 오를 수 있다. 온종일 피나도록 몸을 박박 문질러 씻을 생각을 하면, 똥은 공포 그 자체다.
극단주의자들이 무섭다. 종북, 일베, 메갈, 박사모 등등,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의사소통의 여지가 1도 없다는 것이다. 난 이런 극단주의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토론이나 논쟁은 물론 사절이다.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논리에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문답무용인 사람 앞에선 논리나 근거 따윈 소용이 없다. 이런 이들을 발견하면 절대 말을 섞지 않고 재빨리 피신한다.
인신공격을 하면 편한 일이긴 하다. 극단적 주장을 펼치며 사회 안녕을 저해하는 이들에겐 욕을 퍼붓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순간 내 가치도 낮아진다. 부모의 안부를 묻는 패드리퍼에게 같은 말을 하면 나도 패드리퍼가 된다. 똥에 맞서면 나도 똥이 되어 더러워진다. 정신건강도 상한다. 그래서 똥에 맞서는 것이 무섭다.
적절한 대응을 찾을 수 없다. 이성이 없는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까? 과거 진보 언론이었으나 수구로 바뀐 언론들과 가짜 미투로 무고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집단광기에 가깝다. 주장을 반박해도 자꾸 반박할 것이 생겨나며 추가 사과까지 요구한다. 밝힐 수 없는 것까지 밝히라고 한다.
위의 전화 에피소드는 외에도 무고 당한 경험(성 관련은 아니지만)이 있는 나로선 지금의 사회가 무섭다. 무고 당한 정봉주를 보며 자꾸 감정이입이 된다. 이 사회가 걱정된다. 밝은 글을 쓰고 싶은데 자꾸 어두워 지는 나 자신도 걱정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