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가장 긴 연애를 하며 생애를 보다 다채롭게 바라보게 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데 그럴 겨를이 없다. 일단 익숙함과 소중함이 공존하는 가치란 걸 차치하고라도 시간을 머금은 열애는 다른 온도로 설렘을 준다.
익숙함은 요즘같은 시대에 흔치 않은 매력이다. 매일 세상이 바뀌고, 심지어 며칠 사이에 동네 풍경이 달라진다. 겨우 몇 년 전까지 그대로던 고등학교 등굣길은 절반 가량이 재개발에 들어갔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롯데리아나 오락실이 있던 시절, 에그옐로우가 없던 시절은 씻은 듯 사라졌다.
사람 사이도 비할 바 없다. 오랜 인연은 얼마나 소중하던가. 친구가 오래됐다 해서 그 중함이 줄어들리가!! 하지만 교복을 벗어난 시점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우리는 시간을 겨우 맞춰도 보기 드문 얼굴이 됐다. 가족도 마음 터놓고 함께 시간을 비우기 어려운 현실이다.(게으른 시간이 절실ㅠ)
그렇기에 연인의 익숙함은 참으로 반갑다.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 여지껏 가장 친밀한 존재로 곁에 두는 일. 연인이 내게 익숙한 그대로라서 고마울 따름이다. 서로에 대해 가장 데이터가 풍부해서 능숙하게 패턴을 익힌 사이는 인간적으로도, 연인으로도, 세상에서도 매우 귀한 자원(?)이라고 느낀다.
가령 나도 모르던 내 힘듦을 상대방이 알아차릴 때, 내게 익은 방식대로 나를 기다리는 모습, 늘 비슷한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얼마나 달뜨는 일인지. 자꾸만 무언가 지나쳐 흘러버리는 세계 속에서 애써 내 옆에 정박해있는 그 시절이 마음을 덥힌다. 돈독함은 신뢰를 넘어 설렘이 될 수 있다.
도리어 오랜 연애는 전혀 다른 숙제를 주는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에게 익숙해져 맞춰진다 해도 끝끝내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진실 말이다.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도 달리 살아왔다는 티가 난다. 영화도 나는 멜로~너는 액션~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아무리 오래 사랑해도 우린 '각자'일 뿐이었다.
평소엔 그런 게 문제가 안 되고, 둘 사이에 생동감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만약 세상살이가 X나게 팍팍해서 나 자신조차 지탱하기 쉽지 않을 때, 두 점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게 아프도록 탄로나고 만다.
누군가 더 힘들 때, 상대방이 더 안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요지경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성실한 일개미처럼 뚠뚠 헤쳐나가며 자기 몫의 생활을 꿋꿋하게 벼려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밀착한 사이라 해도 그 틈은, 가장 피곤한 순간에 불쑥 튀어올라 훼방한다. 그건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될 수 없는 타인을 감당하는 작업이 평소라면 익숙함으로 무던히 넘길 수 있는데. 녹초가 된 상태에선 그러긴커녕 제 하루조차 채 삼키지 못한다.
처음의 설렘, 맞춰가는 어려움, 동화하는 과정. 그 모든 노력에도 연애는 불가능을 향한 실험 같다. 그냥 인간들을 흩뿌려놓고 그 상호작용만 놔둬도 복잡다단할텐데. 먹고 사는 문제, 다른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 생의 우울감은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 가장 쉽게 도드라졌다. 익숙함만으로 무마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은 고초를 겪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오늘도 무사히 연애를 사수했다.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 건 초기나 나중이나 마찬가지.(애초에 초기라는 설정이 가늠 가능하려나ㅠㅠ) 다만 가장 열띤 사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지키기위해 협상테이블은 끊임없이 돈다. 유연하게도, 뻣뻣하게도, 묵묵히 혹은 시끄럽게 사랑은 세상을 이겨낸다.
그리고 이런 도전(?)을 시도라도 해보는 데에는 말초적 쾌락(!)뿐 아니라 익숙한 협의체(!!)의 덕이 크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다가온다. 우린 매일, 매주, 필요할 때마다 둘의 관계를 피드백한다. 외롬이 쌓여 터져버린 내게 주형이는 '지윤이가 말하기 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시작하면 그 대화를 이어간다'는 전략을 시전했다.
"지윤이가 앞으로도 잘 학습시켜줘^^"라는 명언을 남긴 채(...)
전과 다르게, 아직도 힘겹게 두 인간이 끈질긴 연애를 한다.
익숙함이라 가능한 일이겠지. 집에 돌아오며 새삼
'배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단상을 남겨본다:)
- 2017년 11월 첫째 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