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렇게 종교적인 삶을 살면서도 대부분은 탐욕과 증오를 일으키는 순간들을 확실하게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뼛속까지 종교적인 삶을 사는 ‘종교인’들 조차도 탐욕과 증오가 일어나는 순간을 스스로 수없이 마주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자체는 내 자유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내 탐욕과 내 증오로부터 내 자신과 누군가가 고통받게 된다면 바로 그 때 부터는 이 탐욕과 증오는 문제가 된다. 이것들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자 종교에 의지하는 것인데, 사실 종교는 방향만 제시할 뿐 그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종교가 깨끗한 세상과 거룩한 삶을 장려하기는 하지만, 종교 그룹에 참여 여부가 청정과 오염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어떤 특정한 것만이 올바르고 깨끗하다. 즉 ‘무조건 옳다’는 말은 결코 옳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종교는 ‘탈세속’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오늘날 다시 세상은 그 종교의 정해진 특정한 관념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탈종교’를 요청하는 것이다. 때문에 다양한 종교들이 받아들여지고, 각각 생각하는 진리에 따라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단,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각자에게는 옳은것인데 그것이 왜 옳은지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서로 대화와 논쟁, 설득이 가능해야 한다.
대개 누구나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볼 때 자신이 가진 특정한 안경을 끼고 본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을 구분해 내고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다. 그러니 의사 눈에는 환자만 보이고, 경찰 눈에는 범죄자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이 대목에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스님 눈에는 ‘중생’만 보일까, ‘부처’만 보일까?
생각해보면 신지학회의 멤버들은 아마도 그 때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모든 삶의 믿음과 생각이 거의 동일한 세상에서 살던 서구에서 새로운 지식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절대자가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신비한 힘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리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 핵심적인 재료가 바로 인도의 철학과 티벳의 불교와 같은 것들이었다. 신지학회의 상당부분은 점차 신비종교화 된 부류도 있고,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특정한 기독교로 발전하기도 했으며, 또 불교가 갖는 취지와 많은 차이가 있기도 하다. 다만 이 흐름은 아마현대의 서구, 특히 미국사회에 불교를 전달하고, 기존의 서구의 사유와 불교가 서로 익숙해지는데 분명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이후 불교나 인도, 동양의 철학을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신지학회를 통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기독교 정책에 따른 교육용 잡지들에 대항하여, 또 그것을 보고 배워서 스리랑카의 불교교단은 수많은 불교잡지들을 식민지 상황에서 만들었다. ⟪두르랍디 위노다니⟫를 쓴 구나난다 스님은 1864년 부터 1899년까지 4차례, 혹은 다섯 차례의 기독교와의 교리논쟁에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파나두라 논쟁’이다.
이 논쟁은 ⟪세일론 타임즈The Ceylon Times⟫ 신문에도 실렸고,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 내용이 번역되어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왔는데 이 사건을 중심으로 몇몇 스리랑카 불교교단의 상황은 미국출신의 군인 대령이었고, 영국 식민정부의 총독부 관료이기도 했던 헨리 올콧 Henry Olcott(1832-1907)을 등장시킨다.
그는 불교신지학회Buddhist Theosophy를 세웠고, YMBA(Young Man Buddhsit Association)운동을 시작했다. 식민정부와 스리랑카의 불교가 관련된 거의 모든 관계를 중재했고 변론했다. 그는 또한 부처님 오신날(성도일, 열반일)인 인도달력으로 2월 혹은 3월 에 해당하는 비샤카/웨삭Vesak을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 결정이 오늘날 UN이 지정하고 후원하는 '부처님 오신날'로 지정되어 전세계의 불교도들이 매년 5월에 동남아 지역에서 모여 행사를 치르게 된 시초가 된다. 그가 식민지 스리랑카의 불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법안과 불교단체, 잡지, 설립한 학교들은 다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 머리카락에서 푸른색 (자비, 평화),
- 피부에서 노란색 (중도, 공)
- 피에서 붉은 색 (수행)
- 흰색은 치아(청정, 해탈)
- 옷에서 주황색(붓다의 가르침, 지혜)
를 따왔다. 선은 가로세로가 붙어 있 는데,
- 가로선은 진리의 영원성
- 세로선은 다양한 이들이 그 진리에 대해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물론 이 해석은 나라의 전통마다 조금씩 변화, 발전되기도 했다. 이 문양이 바로 오늘날 불교도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인 불교기(佛敎旗, Buddhist flag)가 되었다.
신지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을것이고, 또. 불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신지학회의 교리나 교단이 가진 의미는 별로 크지 않기도 하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보게 되는 저 불교기는 신지학회와 그 창시자인 동시에, 스리랑카 불교교단의 최대 후원자였던 올콧 대령, 식민지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싸웠던 구나난다 스님, 그리고 19세기 전세계를 대상으로 했던 열강들의 식민지 사업, 그 이후 신지학회를 중심으로 한 불교와 서구의 본격적인 만남 등 수많은 배경과 연결되어서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