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부처님의 가장 인상적인 삶의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불교도들은 대개 부처님의 탄생장면을 꼽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란 말은 실은 가장 오래된 유행어 중 하나이고 그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또한 붓다가 깨닫는 장면도 있고, 설법하는 장면도 있다. 물론 ‘불교’의 정확한 출발지점은 아마 그 깨닫는 장면이나 처음으로 설법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인간으로부터 출발했던 그가 성자로서의 마지막 모습이자, 또한 가장 인간적인 열반이야말로 붓다의 전기에서 가장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다만 인간의 모습으로 시작했으니 언젠가는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게 굳이 의미라면 의미일 뿐이다. 우리에게 인생의 시작과 끝은 분명 전부이며, 그 이후의 일이 너무도 두렵고 궁금하다. 남아있을 나의 죽은 신체와,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는 나의 영혼, 정신, 혹은 귀신 - 뭐라고 부르든 그 것 - 의 행방.
‘쓸 데 없고 불필요한 생각의 작용 - 번뇌’
라고 단정 지으며
"다만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라"
고 했을 뿐이었다. 그게 지금 저 유명한 단 한 마디 '지금, 바로 여기now and hear’란 가르침이다.
그런데,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스승이 돌아가시는 장면을 제자들로서는 결코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열반경⟫이라는 책에는 시자였던 아난다와 열반직전의 붓다와의 마지막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이별을 두려워하는 어린 손자에게 인생에 대해서 쉽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같이 자상한 붓다의 목소리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현장에 있었던 또 한 사람이 바로 아니룻다anuruddha이다. 붓다가 열반한 후 인드라신이 가장 먼저 붓다에게 조문시를 바쳤다. 그 다음으로 조문의 시를 지은 것이 아니룻다. 아난다는 다음 세 번째로 조시를 지었다. 기억력이 좋은 독자들은 아마 아니룻다와 붓다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룻다여, 그대는 왜 출가했는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 유로워지기를 원해서 입니다.”
“그런 이가 중요한 설법시간에 졸면 되겠는가”
“부처님 저는 다시는 당신 앞에서 눈을 감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니룻다는 그 때부터 잠을 자지 않았다. 그래서 눈병이 났는데, 부처님이 직접 의사를 불러 아니룻다를 진찰하게 했다. 의사는 눈을 감고 잠에들면 절로 나을 것이라고 했지만 아니룻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룻다여, 눈은 잠을 양식으로 한다. 잠에 드시오”
“부처님 열반은 무엇을 양식으로 하는지요”
“열반은 게으르지 않음을 양식으로 한다”
“부처님, 그래서 저는 잠에 들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부처님은 복덕이 충만하여 더이상 복을 지을 필요가 없으신 분인데 어찌 다시 복을 지으십니 까”
“복을 짓는데는 비록 깨달은 이라도 게을리 하면 안된다네”
당연하게도 부처님은 당신의 꾸지람으로 눈이 멀어버린 제자에 대해 많은 고통과 후회에 시달렸고 가슴아파했다.
또 붓다는 당신의 꾸지람 때문에 당신의 옆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제자 아니룻다를 보시면서 열반의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튼 붓다가 열반에 든 후 붓다에게 바치는 담담한 그의 조시는 붓다의 열반, 혹은 죽음을 꺼진 불에 비유하는데 그치지만, 오래전 부처님과 아니룻다의 과거사를 아는 이들이 지켜 볼 때는 깨달음을 통해 차분해진 고요함 사이로 왠지 한줄기 가늘고 고요한 눈물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nāhu assāsapassāso, ṭhitacittassa tādino
anejo santimārabbha, yaṃ kālamakarī Muni
asallīnena cittena, vedanaṃajjhavāsayi
pajjotasseva nibānaṃ, vimokkho cetaso ahū
뜻 고매한 마음 요동없이 비할 수 없는, 성자의 숨은 지고
마음 고요하여 혼란하지 않게 무니께서 마지막 때를 갈무리 하시니
미혹 떠난 마음으로 참으면서 받는 괴로움도 이제는 없고
마치 등불이 꺼지듯 열반으로 그의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source_불식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