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주로 맛보다는 향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도 그 향을 충분히 감상하는 것이 하나의 주요한 부분인데,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음식이란 하나의 문화가 되고 '향수' - 즐기는것- 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음식이 귀할 때는 그 음식의 풍미보다는 그저 하나의 생존에 필요한 것으로서 귀한 재료인 것이지 그 맛을 판단하여 좋고 나쁘고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차의 경우 그 향을 먼저 취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결례가 된다. 그래서 흔히 차의 빛을 보고, 향을 맡고, 다음으로 맛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차는 향으로 취하는 것으로 오히려 혀로 맛을 본다는 것은 향을 느끼는 것 보다는 못한 것으로 본다. 맛을 보는 것이 물리적으로 좀 더 직접적이니 은근하고 모호한 것을 예의라고 생각했던 동양사람들에게는 그럴 법도 하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 따져야 직성이 풀린다면 카테킨이나 비타민이나 사포닌, 탄닌, 데아닌 등 수많은 주요한 요소를 모두 따져야 하니 좀 더 복잡해 질 것이다. 성분은 아니지만 효능에 대해 몇 가지 일반적인 상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얼음공주, 녹차 | 화끈한 장수, 홍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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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차종류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몸이 냉하거나 기름진 음식이나 육식보다도 채식을 평소 많이 하는 이들은 너무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 대개 녹차가 성질이 차니 따뜻하게 해서 마시면 된다고 하지만, 동양에서 차고 뜨거움은 그 기운이 가진 성질에 따른 것이므로, 마실 때의 온도는 성질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므로 아무리 뜨겁게 해서 마신다고 해도, 성질이 차가운 것과는 연관성이 없다. | 발효된 홍차는 반대로 성질이 뜨겁다. 성질이 뜨겁다는 것은 생명력이고 떠오르는 성질이니, 차분하게 가라앉을 때는 방해가 된다. 생명력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가라앉고 떠오르는 것은 균형이 잘 맞아야 하니, 뜨거운 기운이 넘쳐나면 활동은 왕성할 수 있지만 가라앉지를 못해 잠을 자거나 쉬지를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홍차와 같이 더운 성질의 차를 늦은 오후에 마시게 되면 저녁에 숙면에 심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
차고 덥고를 떠나 차란 생각보다 한쪽으로 효능이 강하고, 또 대개 많은 양을 마시게 되므로 몸 자체가 허약한 사람들은 아주 묽게 적은 양을 마시는 편이 좋고,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속을 든든히 하는 것 처럼 차를 마시기 전에도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기름기 많은 음식이나 과식후의 차는 대개 이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은 차가 가진 고유의 장단점이 아니라 대개 마시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무엇이든 이로운 면과 해로운 면이 공존하는 법인데, 대개 그것이 무엇이든 적당한 선을 지키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안좋은 부분이 부각되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 고, 좋다고 하면 대개는 무리해서 과하게 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 세상 무슨 일이든 과하면 대체로 결과가 좋지 않고 독도 조금씩 쓰면 약이 될 수도 있지 않던가. 결국은 사람에 달린 것이다.
적응이 안되는 맛에 며칠 몰두하다가, 문득 재배지에서 가져온 저 잎이 '차'가 아니라, ‘차재료’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차에 대한 칼럼을 이렇게 연재하면서 그 생각을 못했다니. 부끄러졌다. 이미 차로 만들어진 이름 붙은 차만 늘 생각하다보니 '차재료'일 거란 생각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청이란 열을 가해 생잎의 습기를 완전히 빼내고 덖는 과정이다. 열풍을 가하거나 불로 직화, 혹은 찌거나 팬에 덖는다. 차에 따라 적용시키는 방식이 다르며, 이 결정에 의해 차의 맛이 거의 결정된다. 방식이 다른 것은 효능도 있지만, 최상의 맛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 방식에 따라 같은 잎이라도 전혀 다른 차로 탄생하게 된다.
그라비올라를 대략 일곱 차례를 볶고 말렸다. 원래 예전에 유명한 약재료들을 9번 말리고 찐다고 9증9포라고 하지 않는가. 그정도 까지는 가지 못하고, 일곱번을 식히고 볶기를 반복해 봤다. 전용가마가 아니라 가스불과 프라이팬에 하다보니 사실 더 볶으면 잎이 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과정을 통해 그냥 햇볕에 말린 비린내나는 나뭇잎이 제법 느낌이 나는 차로 변했다. 약간의 구수함과 나름의 깊은 맛도 있다.
source_Bulsik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