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gora] 스팀잇의 익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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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스팀잇이 익명을 기반으로 한 사이트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나는 스팀잇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익명이 아니라면 내 스스로 뻘글이나 감정과 관련된 글들을 적지도 않았을 것이고, 과학이나 수학 글들을 작성하는데 그닥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익명이 아니었다면 스스로의 자체 검열을 통해서 조금 과격한 표현이나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제거하고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신경쓰며 많은 부분들을 자제하거나 삭제하지 않을까 한다. 가뜩이나 소심한 나는 커다란 그늘 뒤에 숨어 가끔 나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현실 세계에서도 나는 큰 소리, 자기 주장을 잘 내지 못한다. 물론 가족이나 친한 친구한테는 나의 주장을 말하고 때로는 일관하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누군가 나에게 어떠어떠한 것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는 관련 내용을 대답하고 더 가르켜 주려고 하지만, 정작 내가 몰라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할 때 나는 그것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결국엔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사람을 만날 때에도 지나가면서 얼굴을 아는 사이라도 누군가의 소개나 상대방에서 먼저 접근하지 않은 이상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익명이 되는 순간 달라진다. 익명이 되는 순간 나는 마치 내가 다중인격자였던 것마냥 여러 인격이 되서 여러가지 행동을 하곤 한다. 스팀잇 이전의 익명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에서 많은 활동들을 했었는데 각기 장단점이 있었다. 익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정보의 '신빙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유출해 사건을 그르게 한 것을 몇번 목격했었다. 그리고 익명의 장점 중 가장 큰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익명이기에 언제든지 접고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갈 길이 있기에 자유롭게 내 의사를 표출할 수 가 있다.
[익명성의 자체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을것이라 생각해 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스팀잇은 익명을 기반으로 한 SNS 이다. SNS 이기에 팔로워가 있고 팔로잉을 하며 관계를 확장해 나간다. 어느정도 규모가 커지면 이 익명으로써 했던 '자유'를 더이상 누릴수가 없어진다. 마치 초기의 유투버나 아프리카 bj 들이 시청자가 늘어나면서 자체 검열을 하기 시작한 것 처럼, 시청자 혹은 구독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반응이 별로라면 처음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 하기도 한다.

[나도 최근들어서는 혹시나 내 글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지 않나, 먼가 논리전개에 이상한 부분이 있지 않나, 문맥의 흐름에 맞는가 등 예전보다 더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

익명이지만 SNS라는 것은 결국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내 글들 속에서 내 개인정보들이 이 블록체인에 박제가 되어 버린다. 수완이 좀 좋은 사람이라면 커뮤니티 내에서의 나의 관계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내 글들의 문체나 어투, 관련 글들이 어떤 시기에 올라왔다 등을 유추해서 '현실의 나' 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스팀잇의 특정상 7일이 지난 글들은 수정할 수 없고, 또 수정한다고 해도 수정하기 전 원본을 언제든지 확인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는 인터넷과 정보 검색이 정말 발달된 나라이다. 먼가 사건 사고가 터지면 네티즌들은 거의 모든것을 찾아낸다. 심지어 특정 사진 한 장으로 거의 모든 것을 밝혀낸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사실 스팀잇은 SNS 이기에 익명이지만 따지고 보면 또 익명이 아니다. 스팀잇은 SNS 이고 글을 쓰며 comment 를 쓰며 나아간다. 사람의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패턴이 내포되어 있다. 익명이기에 그 사람들은 더 자기 자신들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지고 그 은연중에 현실의 자신이 들어나곤 한다.

더구나 스팀잇은 글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다. 이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결국 이 투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내 정보의 '신빙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쓰는 글 중에 은연히 내 정보들이 노출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스팀잇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익명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스팀잇에 포스팅 하나 하나가 늘 수록 사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나 하나씩 밝히고 있는 것이랑 다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포스팅 수나 올리는 글의 내용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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