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2]

Words
628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레미제라블」을 다섯 번 읽었다고 고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굿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멧 데이먼에게 하는 충고입니다.

오만했습니다. 이십대의 오만이 콤플렉스와 편협함에서 비롯된 소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지난 몇 년은 좀 더 어른의 자신감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삶에 대해 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 이상의 지식과 인맥을 쌓아보았고, 본인이 먼저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을 꽤 잘 이해하는 쓸만한 유망주라고 믿었죠.

자부심을 가졌던 부분은 이성적인 영역에 그치지 않습니다. 감정에 기반한 결정은 그 자체로는 어쩌면 별다른 힘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적나라히 직면하되, 스스로 쌓아온 경험과 조화를 일으켜 마침내 어린 시절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보곤 했습니다. 삶은 어차피 욕망의 다발이니,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재미를 찾으면 내 인생은 되었다라고 생각했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낸다. 삶의 주관자로서 내 삶은 내가 움직인다, 그리고 끝내는 다 이뤄서 지루해져 버리겠다.

전만큼 극단적거나 호전적이지는 않았고, 머리를 쓰고 기다리는 법도 배웠지만 여하간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겠다는 그 관점은 별로 변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더 이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준비하고 배워도 오지 않은 미래에는 대응할 수 없더군요. 본인을 육식동물로 정의내리며 덤벼보라는 식으로 어금니를 뻐겼더니 제일 먼저 그 어금니부터 잘라가더라고요.

예전 고등학교 때 자신의 강의가 전국 최고라고 자부하던 수학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90년대에 학원가에서 계약금만 2억을 주고 자신을 스카웃하려고 했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무도 그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선생님 강의는 정말 최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얼마 전 고등학교 법조인 동문회에서 만난 15년 터울 선배의 말을 들으니, 그 선생님의 말은 사실이었더군요. 오래 전 그 선생님의 수학 강의는 정말 독보적이었다고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영국으로 이민갈 때의 일입니다. 수속할 짐이 있냐고 묻던 세관원에게, 그는 신고할 것은 자신의 재능 뿐이라는 패기 넘치는 말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말년의 그는 비참했고 그의 저작도 전만큼 주목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재능 같은 것은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며, 매일 노력할 수 있는 꾸준함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인격신을 믿지 않습니다. 인격이나 자아 같은 것이 이 광대한 우주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니까요.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고기를 위해 일년에 몇 백억 마리의 동물이 고통스럽게 좁은 우리에서 살다가 도살당합니다. 과연 저 우주 삼라만상의 법칙을 관장하는 지배자 입장에서, 그런 가축들과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 기도에 관심이 있을까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미물이고 갇힌 자들입니다. 어떻게 살든 간에 신이 주는 상벌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마치 생물은 숨을 쉬지 않거나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처럼, 분명한 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번에 벌어진 사건을 제 삶에 대한 분명한 경고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도전하기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고 욕망하는 것이 있으니, 때로는 싸워보기도 하고 모략도 써보겠죠. 어떤 식으로든 또 리스크를 지게 될지도 모르니 실수하고 거꾸러질 날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두 가지 정도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본인이 결코 결정할 수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떤 결과에도 불평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세상에 쿨한 사람은 없습니다. 본인이 쿨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운이 좋게 지금껏 아픈 곳을 피해 맞았을 뿐입니다. 기대하지 않고자 노력할 생각입니다만 또 아플 것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겸허히 살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몇 년이나 더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순응하면서도 또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제가 느끼는 것입니다.

십 년 전 저는 해괴망측한 이유로 대악인이 되겠다(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는 결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떤 방향성에 대한 결론은 가급적 지양하고자 합니다. 삶은 비장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되어있는 것이더라고요. 어쩌면 그것은 제가 큰 일은 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 밖에 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여하간 현재 제가 느끼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

불교의 경전에는 ‘아무 것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바로 깨달은 자이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이곳에 제가 모아놓은 이야기와 써놓은 글들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꺼질 삶, 모닥불 아래 잠들기 편히 읊조리는 잡담 정도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지요. 아직 졸리지 않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2017년 11월 19일, 추운 겨울 좁은 자취방에서 쓰다
[가입인사2]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