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스의 대화 - 북미정상회담 취소와 국제관계의 본질

admljy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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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통일시대를 대비한 통일법제 연구 및 국제법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시는 분은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장희 교수님입니다. 소위 진성 좌파입니다. 통일교육 서적을 발간한 대가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적도 있었죠.

어느 날 우연치 않게 이 분과 술 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사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시더군요.

국제법을 배우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에게 빌기 위해서랍니다. 국제관계란 철저한 힘의 논리대로 움직이지만 그나마 국제법이라는 명분을 들고 인정에 호소하면 조금은 사정을 봐줄 수 있으니 잘 배워두라는 것이었죠.

실로 국제관계의 본질을 꿰뚫은 명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은 미국 쪽의 책임이 더 큽니다. 단순히 이번 회담 뿐 아니라 사실은 북미관계 자체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당시 정상국가를 향해 가던 북한에게 뱉은 조지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이라크나 리비아를 들쑤셔 놓은 전례를 보았을 때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다만 누구에게 잘못이 있느냐는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파워게임이고, 이미 파워의 레벨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남한은 아예 당사자가 아니게 되었고, 북한은 중국의 찔러보기용 장기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사제 권총 하나 든 인질범 앞에 수십명의 정예 병력이 쩔쩔매는 것은 인질의 생명 때문입니다. 이제 미국은 남한이라는 인질의 목숨을 신경쓰지 않는 선에 올라온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가진 핵이라는 것은 더 이상 게임 체인저가 되지 못 합니다.

아래, 당시 표면 상 민주국가였던 아테네가 다른 폴리스였던 멜로스를 침공할 당시 나누었던 대화를 인용합니다. 당시 멜로스는 아테네의 적대국 스파르타의 동맹이었지만 동맹 관계는 느슨했고 실은 아테네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테네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불안한 사정을 극복하고,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해 떨어진 체면을 만회하고자 멜로스를 침공하게 됩니다.

​이 대화에서 아테네를 미국으로, 멜로스를 북한(엄밀히 말하면 북한이 아니라 김정은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중국이 손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은 김정은이지 북한이 아닙니다)으로, 페르시아를 구소련으로, 그리고 스파르타를 중국으로 치환해서 읽으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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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 우리는 이미 페르시아를 무찔렀습니다. 따라서 국제 질서의 준수나 평화를 꾀한다는 미사여구는 굳이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당신들이 스파르타를 돕지 않았다거나 우리에게 딱히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런 문제들이 실제적으로 논의될 때의 정의란 남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할 수 있는 힘의 질입니다. 강자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며, 약자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멜로스 : 민주 국가를 자처하는 당신들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득실에 관해서만 논의하자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우리는 보편적인 선(善)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당신들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정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다소 타당성이 결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소명할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당신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귀국이 패했을 때, 당신들이 자행한 일이 그대로 당신들에게 돌아오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테네 : 우리는 당신들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들이 당신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합니다.

멜로스 : 우리가 노예가 되는 것과 당신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어떻게 똑같이 좋은 일일 수 있겠습니까?

아테네 : 당신들은 항복함으로써 재난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고, 우리는 당신들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당신들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습니다.

멜로스 : 우리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호의적인 중립국으로 남는 것을 용인할 수 없습니까?

아테네 : 용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호의가 당신들의 적대감보다 우리에게 더 위험합니다. 당신들의 호의는 우리가 무력하다는 징표로, 당신들의 증오심은 우리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우리 속국들에게 받아들여질 테니까요.

멜로스 : 우리의 제안에도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현재 중립적인 국가들이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게 되면, 당연히 그들은 그들도 당신들에게 공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 모두 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전쟁에서 운명이란 약자에게 보다 많은 여지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테네 : 그런 발상은 지금 당신을 위기로부터 구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멜로스 : 우리들은 그릇된 것에 반하여 옳은 편에 서 있으므로 신이 당신들과 동등한 행운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힘이 부족하나 스파르타와 동맹을 체결한 상황이고, 우리는 그들의 선린이며 그들은 명예를 중시하므로 반드시 우리를 도우러 올 것입니다.

아테네 : 우리가 알고 있는 한, 힘을 가진 자가 가능한 것을 지배하는 것은 필연적인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것이 신의 호의에 대한 우리의 견해이자 권리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후 우리가 처음으로 그에 따라 행동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발견했을 뿐이며, 이 진리는 우리 이후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도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그 진리에 행동할 뿐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말하는 행운에 있어 우리가 불리한 편에 서 있다고 걱정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스파르타가 당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요? 하하 정말 놀라울 만큼 순진한 믿음입니다. 딱히 부럽지는 않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스파르타인들은 전혀 명예롭지 않으며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멜로스 :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우리들을 배반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테네 : 이익을 추구하는 자라면 마땅히 자신의 안전을 꾀할 것입니다. 정의와 명예의 길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립니다......잘못된 감각으로 인해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당신이 만약 정말 현명한 자라면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전쟁과 안전을 선택할 기회가 있을 때 잘못된 길을 택할 만큼 무감각하게 오만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들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가 당신에게 그저 조공을 바치라는 동맹을 요구하고 당신들의 부를 지킬 수 있을 자유를 허용한다면 그것에 승복하는 것이 불명예가 아님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동등한 자에게 대항하고, 우월한 자에게 존경심을 갖고 행동하고, 약한 자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 안전의 법칙입니다.

멜로스 : 우리의 결정은 처음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도시가 탄생한 이후 700년 동안 누려온 자유를 짧은 순간에 포기할 마음이 없습니다.

아테네 : 당신들은 자신들의 희망 사항에 맞게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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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테네와 멜로스 사이에는 전쟁이 발발하고, 고대 전쟁이 그렇듯 패전한 멜로스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국제 관계에 있어 강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약자를 병탄한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 시점에 김정은이 굴복하지 않는다면 이 멜로스 전쟁의 재연을 보게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추후 다시 쓰겠습니다만 미국은 북한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도 공격할 수 있는, 경우에 따라서는 핵 전쟁도 수행할 수 있는 또라이 국가입니다. 문제는 그 국가가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것이며, 그 국가의 지도자가 트럼프라는 것입니다.

만약 김정은이 판단을 잘못한다면 그 피해자는 김정은 뿐 아니라 저를 포함해 한반도에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부디 그의 현명한 판단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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