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니 사실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좀 사이가 멀고 알게된지 오래인 그런 녀석이 있다.
스타크래프트만 좋아했고 아직도 모쏠인 녀석이다. 그 녀석에게 스타크래프트란 친구들보다 부족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적어도 내가 게임은 너희보다 잘 한다, 이런 식. 그렇다고 게임을 막 잘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프로게이머나 유튜버는 고사하고 내 주변에도 그 정도 플레이할 수 있는 사람은 깔렸었으니까. 그리고 그 스타크래프트가 고전이 되어버리자, 마치 사회가 자신을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항하는 노인마냥 그 현실에 허덕였다.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자신이 모쏠이라는 그 현실을 변명하고 싶어서였다. 친구들의 연애담 앞에서 나는 신부가 될 사람이라고 일갈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약간의 자각은 있었는지 마지막 면접에서 하지 않겠노라고 답했다.
나는 그 친구를 비웃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친구를 놀림거리로 삼으며 심리적인 우월감을 가졌던 나와 내 친구들을 주제로 삼고자 한다.
고작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게 자랑거리가 되고 치킨집에서 맥주를 먹고 총질 게임을 하며, SKY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방대는 아니니, 어쨌든 우리도 훌륭한 사람이고 나름 괜찮은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안심했던 그 시절은 분명 못난 시절이었고, 실은 반에서 별 악의 없이 사람 하나 왕따 만들며 낄낄 거렸던 것과 아무 차이도 없었다. 솔직하게, 고등학교 시절 앞에서 설치던 무섭게 생긴 친구들이 없어져서 좀 살만하다고 고백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내 대학 동기 누군가는 그 시절, 나 그래도 어느 대학 다니는 학생이요라고 개폼 잡은 게 아니라 여대 앞에서 비니 모자를 팔아 사업 자금을 모았고 지금 몇백억대 자산가가 되었다.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대 앞에 비니 모자가 아니라 하루 종일 잠도 안 자고 일만 하거나 고시 공부를 해도 실패할 수 있다. 인생은 육성 시뮬레이션이 아니니까. 꼭 들인 시간과 캐릭터의 성과가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걸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도 허세가 될 수 있음을 안다. 은연 중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알량한 계산 같은 걸 못 읽는 바보는 없다. 나도 내 친구들도, 어쩌다보니 그럭저럭 한 몫 하며 살게 된 지금 이 따위 반성도 웃긴 일일지 모른다. 재수가 없어 그 한 몫도 못 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대단할 걸 추구하며 살고 또 뭘 이루어야 한다고.
다만 그 시절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분명 한심했다. 비웃어도 좋다. 나는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