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한 사람을 알게 됐다. 그는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게 자주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자고 연락했는데, 일을 배제한 사적인 만남을 거의 갖지 않는 내겐 그것이 일종의 구애로 느껴졌다. 나는 그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떤 방식으로 거절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어떤 날은 그의 연락이 구애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떤 날은 이 모든 게 나의 망상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거절을 하긴 했지만, 연애 감정을 배제한다면 그가 제안한 몇몇 자리는 함께하고 싶었다. 여지를 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여지를 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완곡한 표현으로 만남을 피하던 중에, 어떤 날은 내가 왜 그에게 일말의 호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몇 가지 대답을 파고든 후에 그 이유는 딱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가 나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다정하게 대해주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에게 싫은 표현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를 좋아하려 애썼던 나는 종국엔 그의 기묘한 서재에 들리게 되었다. 서재의 한쪽 벽엔 크기에 맞게 제작된 듯한 커다란 책장이 있었는데, 그 책장엔 CD와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처음엔 그 크기와 방대한 양에 압도당했다. 잠깐은 그 모든 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위화감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 그 불편함을 생각해보았고, 그의 서재에는 내밀함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책장은 마치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반 100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문학 1000선'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책장에 꽂혀있던 그 많은 음반 중 내가 모르는 음반은 거의 없었지만, 내게는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도 그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 책장에 나를 맞출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완곡하던 거절은 조금씩 딱딱해졌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이었는지, 그와는 그렇게 멀어지게 되었다.
이때를 떠올리면, 언젠가 지저분한 방에 뒹굴던 Mike Oldfield의 Tubular bells을 계기로 시작되었던 사랑도 함께 떠오른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데, 소설은 겨우 7월을 지나고 있다. 책을 읽다 잠깐 잠들었고, 꿈에서 나는 그 '완벽한' 책장과 함께 있었다.
잠에서 깬 나는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들었고, 팔짱을 껴 양팔을 문지를 수 밖에 없었다.
달밤이 깊어져갔다. 깊은 밤이 자욱이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8월이 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가을 벌레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