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 다시보기] 사막에서 만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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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행가실 때 징크스가 있으신가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가는 여행지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아주 암울한 징크스가 있습니다. ㅠㅠ 신혼여행으로 하와이를 갔을 때, 태교여행으로 전주를 갔을 때도, 큰 맘 먹고 간 이탈리아와 몰디브에서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어요!!! 처음에는 비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고 저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저의 징크스 때문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너무 불편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부다비의 리와사막에서 비를 마주한 경험을 통해 저희 가족은 비가 오는 날의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일년 365일 중 비가 오는 날이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사막에서의 빗소리는 그 어떤 음악 연주보다 아름답고 운치 있었으니까요. ^^

저는 일 때문에 아부다비에서 1년 9개월 정도 거주한 적이 있었어요. 한국으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 휴가가 다가올 때였습니다. 북적북적한 관광지도 가고 싶고, 여유 넘치는 휴향지도 가고 싶은데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갈지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숙소로 쓰던 낡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빠져 나와 습관처럼 부드러운 모래 위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늦은 밤, 인적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새까만 도화지에 끝없이 늘어져 반짝이는 별들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황홀했습니다.

‘이제 이런 광경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구나… 아이디를 스텔라라고 할 정도로 별을 좋아하는 아내님이 보면 참 좋아할텐데...’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다음 여행지에 대한 계획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사람 마음이 참 변덕스럽습니다. 2년 가까이 있으면서 질리도록 보던 사막이라 이제는 꼴도 보기 싫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여행을 사막으로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결국 마지막 여행지는 아부다비 사막의 정중앙에 위치한 리와사막으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사막을 3시간 가량 달려 목적지인 Tilal Liwa Hotel에 도착하였습니다(이곳에는 호텔이 딱 두 군데 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은 전에 @realsunny님께서 포스팅하셨어요!). 탁 트인 사막 한 복판에 덩그러니 위치한 호텔이 낯설기는 했지만 3일간의 안식처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였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우리의 보금자리로 입성~!! 호텔 밖 삭막하고 고요한 분위기와는 달리 푸른 나무들과 그 위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

호텔 중앙에 위치한 수영장을 보고 물을 좋아하는 우리 첫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오랜 시간 갑갑한 차 안에서 얌전이 있어준 첫째를 위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습니다. 물놀이 전에 반드시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준비운동! 제가 하는대로 고스란히 따라하는 귀여운 첫째를 보면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사막을 바라보면서 물놀이를 즐기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버킷리스트에 올릴 정도로 멋진 광경 아닌가요^^;; 마침 여행객들도 거의 없어 수영장을 전세 낸 것 마냥 마음껏 웃고 떠들면서 놀았습니다.

물놀이가 지겨워질 때쯤이면 사막으로 나가봅니다.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기도 하구요, 모래바닥을 도화지 삼아 그림도 그려봅니다. 준비해간 갈고리와 삽으로 멋진 두꺼비집도 만들어 주었어요. 비록 이곳에는 두꺼비가 없지만 언젠가 새집과 헌집을 바꿀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보았습니다. ^^;

그리고 왜인지 모르지만(?) 아들보다 더 신이 난 저...ㅋㅋㅋ 평소에 타보고 싶었던 4륜 바이크를 타고 사막을 질주해 보았습니다. 사실 제가 쫄보라 너무 멀리 나가지는 못했구요(야생 낙타들이 간간히 보였는데 혹시나 공격을 받을까봐 무서웠어요) 호텔이 보일랑 말랑 하는 곳까지만 나갔다 왔어요. 그래도 모래를 흩날리며 신나게 달렸더니 스트레스가 다 날아 가더라구요. 그렇게 신나게 놀다 보니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저녁을 먹고 첫째를 재우는데 아내님이 컨디션이 갑자기 안좋아졌습니다. 왠지 모르게 속이 좋지 않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며 아이와 함께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깊은 밤 홀로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지는 듯했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을 놓칠 수 없어 다시 방으로 돌아와 아내를 깨워 따뜻한 담요로 완벽 무장을 하고 함께 나가 보았습니다. 나란히 모래 위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싸늘한 공기였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네요.

다음날 아침부터 열심히 놀기 시작했습니다. 호텔 안에는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방과 봉봉, 그리고 대형 체스판이 있었습니다. 우리 첫째는 조커가 되어 모든 채스말을 쓰려뜨렸습니다. 아마 알파고도 우리 첫째한테는 못 이길 듯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분이 오시네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제가 만약 어느 한 부족의 제사장이었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인정받는 제사장이었지 않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따로 기우제를 지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느새 주변은 어둠으로 물 들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기가 생겨 비를 맞으며 수영도 해보았는데요.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추워도 너무 춥습니다. (사막이 마냥 더울 거라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혹시라도 사막에 가실 분들이 계시다면 따뜻한 옷은 반드시 챙겨가세요. 저도 추위에 강한 편인데 사막에서 잘 때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자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따뜻하게 몸을 녹였습니다. 샤워를 하고 가족들과 카페테리어로 나가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더라구요. 저희도 따뜻한 차를 주문하고 무리에 섞여 있었지만 모인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저만 인상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옆에 있던 한 관광객이 인자한 모습으로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관광객 : 왜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나요?
파치아모 : 가족들과 여행을 왔는데 비가 와서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뛰어놀고 싶어하고 아내님은 갑자기 감기 기운이 있는데 비까지 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화가 나네요.
관광객 : 오 이런.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사막에서 비를 마주치는 건 기적입니다. 지금 당신은 기적을 놓치고 있어요!!
파치아모 : !!!

그분의 말 한마디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 매마른 사막이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기적을 보는 것, 이것 자체로도 인생에서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할 추억인데 저는 무엇을 더 바랬던 것일까요? 그분과의 대화 후 다시 바라본 사막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을 빼먹을 뻔 했네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아내님이 둘째를 품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 중 아내님이 갑자기 컨디션이 안좋았던 건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막에서 비를 만난 기적보다, 가까운 곳에서 더 큰 기적을 만나고 있었는지도...^^

오늘 하루도 가정에 평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적같은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지 정보
● Tilal Liwa Hotel - 아부다비 - 아랍에미리트



[지난 여행 다시보기] 사막에서 만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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