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완벽에 도전하는 맛


제 3회 백일장이 아주 성공적으로 치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최해주신 @lekang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제게도 이렇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

저도 이번엔 참가자로서 글을 써보겠습니다


나는 어릴적 뭐하나 잘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마 있었다면 그냥 집에 틀어박혀 비디오테잎이 늘어지도록 디즈니 만화영화를 돌려보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유치원에서의 기억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안좋은 기억뿐이었고 이사를 온 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게 좋은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냥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는 인생친구 두어명을 만난 정도, 인생친구 만났으니 행복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바깥에서 그 친구들과 소꿉장난이나 할 때였고 그외엔 그다지 활발하거나 좋은 기억은 없다.

성적도 별로 좋지 못했고, 인간관계도 그리 여의치 못했다. 유치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나쁜 기억만 가지고 있는 내가 나이만 먹어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질게 없는것은 당연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먹는다고 했다. 마냥 소심한 성격에 뭐하나 끈길기게 노력해본 적 없는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성적이 잘 나와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딜가나 그저그런 중간짜리 삶이었다. 어린 나이에 중간짜리 삶이 어디있겠냐만 그 나이에도 자각할 정도로 난 뭘 잘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딱지치기 마저도 왕딱지를 접어가도 한두판에 따먹히기 일수였으니...

그러던 중 나의 그 어중간함을 극복시켜줄 사람이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교육의 힘으로 극복못하던 그 고질적인 문제를 사교육, 학원 선생님이 극복시켜주리라 발벗고 나서주셨다.

처방은 간단했다. '다른것 다버리고 한 학기 내내 자신이 가르치는 수학하나만 붙들어라. 그날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한다.'

한 학기동안 그렇게 하면 엉덩이 무거워지는 습관과 성취의 맛을 볼테고 그럼 다음학기부턴 다른 과목 성적들도 좋아진다는 지론을 펼치며 어머니를 설득하셨다. 어머니는 선생님께서 피력하시는 그 강한 자신감을 믿고 나를 그 지오ㄱ.. 아니 학원에 밀어넣으셨다.

그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학원에 나갔다. 수업이 없는 날도 학교가 끝나면 가서 문제를 풀어야했다. 풀고, 채점받고, 풀고, 채점받고 ... 집에가고싶어 미치겠는 날도 꾸역꾸역 버텼다. 너무 피곤해서 수업시간에 졸기라도 하면 죽도록 아픈 매가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장비같은 선생님의 매질에 도망갈 생각같은건 죽어도 못했다.

의지력이 약했던 난 2주쯤 되던날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며 도저히 힘들어서 못다니겠다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 비싼 돈을 들여가며 널 보냈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었다. 좋은 선생님이니 계속 배우길 바라셨다.

결국 '엄마 찬스'도 쓰지 못한체 학원에 돌아온 나는 모든걸 체념하고 매일 집에와 질질짜면서 꾸역꾸역 참아가며 문제들을 풀었다. 그렇게 겨울방학부터 시작해 학기가 시작하며 시간이 흘렀고 중학교 2학년, 첫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저 나이가 되도록 시험이 다가올때 긴장감이란걸 잘 느끼지 못했다. 그저 시험지가 나오면 아는 걸 풀고 나오는 것일뿐, 제대로 공부를 해본적 없으니 시험이 다가와도 별 긴장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험은 다른 것이었다. 폭풍전야, 내가 근 3달이 넘는 시간동안 피땀흘려 준비해온 시험이었다. 처음으로 시험을 앞두고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나오길, 그 문제들을 한치의 착오없이 모두 풀어내길 바랬다.

긴장되는 시험.. 문제지를 받고선 미친듯이 풀어나갔다. 그 당시 우리학교 시험출제패턴은 항상 마지막 3문제가 극악의 난이도로 나오는 방식이었고, 명문으로 유명했던 우리 중학교 특성상 매번 그 3문제는 극악의 난이도를 보였다.

풀면서 느꼈다. 마지막 3문제가 이렇게 쉬운걸 보면 이번 시험이 어지간히 쉽게 나오는구나, 이 정도면 나도 백점을 노려볼수도 있겠다...

그날 시험이 끝나고 종례전 마지막 쉬는시간, 수학 답안지가 나왔고 채점을 하며 친구들의 반응을 보니 그날의 시험이 쉬운시험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반장이 마지막 번호의 답을 불러주는 순간 온몸이 저려왔다.

100점. 인생 첫번째 100점이었다. 온 몸과 마음이 부르르 전율했다. 다음 과목 정답을 불러주는 반장의 목소리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한참을 빨간색 플러스펜을 손에 쥔 상태로 마지막 장을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100점은 99점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완벽히 모든 문제를 다맞추었다는 것이고 2자리수가 3자리수가 되는 아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점수이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 수학전체 석차에 100점 동점자는 전교에 날 포함 3명뿐이었다.

어머니는 학교에 아이스크림을 돌렸고 난 학원에 돌아와 그 당시 학생에게 엄청나게 큰돈인 10만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그날부터 100점에 매료되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순 없기에 그 뒤에도 최대한 수학과목 하나만큼은 100점을 맞기위해 노력했다. 그 이후부터 대부분 성적은 좋았고 간간히 100점을 띄우는 학기엔 말로 표현못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지나고 성인이 되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끝없는 도전을 거듭했다.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자 설령 완벽함을 이루어내지 못하더라도 도전하는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나서도 그냥 과목별 시험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마주하는 시험들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면뿐 아니라 내 손끝 발끝까지 저릿저릿 떨려오던 그 순간을 계속해서 갈구했고 아직도 갈구하고 있다.

매번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게 성적이 나오는 시험을 지나 인생의 기로마다 맞닥뜨리는 시험으로 바뀌어 갈수록 완벽한 순간이 올 기회는 점점 더 적어진다.

그러나 완벽을 경험해봤던 사람들은 그날의 전율을 느끼기 위해 마약중독자처럼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결과가 완벽하지 못해도 완벽을 노리고 도전하면 무엇이든 상당히 괄목할만한 성취를 거둔다. 설령 그렇지 못해 실패를 맞고 길에 쓰러져 힘든 숨을 몰아쉬는 순간이 와도 언젠가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거란 힘의 씨앗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을 뒤흔들고 내 인생을 뒤흔든 완벽에 대한 경험을 또 얻어내기 위해 오늘도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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