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35. 오랜만에 쓰는 근황

얼마 전 어느 분의 리스팀을 통해 처음 뵙게 된 @babypangpang님께서 남기신

아 여행기를 주로 쓰시는군요.

라는 댓글을 읽고는 "아. 꼭 그렇지는 않아요."라고 답변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여행기를 제외하고는 아주 가끔 집사 일기를 쓸 뿐, 일기나 책 리뷰, 요리에 관해서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들어 스팀잇에 글 쓰는 횟수가 부쩍 줄어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친하게 지냈던 많은 분들이 이곳을 떠나셨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특히 여행기의 경우 그 누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쓰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가끔이나마 쓰고 있다.

첫 번째 이유보다 보다 훨씬 비중이 큰 두 번째 이유는 글 쓰는데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bbooaae님께, 올해 새로운 걸 시작해서 글 쓸 시간이 줄었다는 댓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당시에 뭘 시작했는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에야 근황을 쓰게 된 이유는 이틀 후에 아랍어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다른 게 하고 싶을까?


아랍어

예전에 이 글에서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듯이 지난해 11월부터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동안 무료로 진행되는 그 강좌는 말하기 위주로 진행되며, 다른 지방의 언어(ex. 북아프리카 토착어, 프랑스어 등)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아랍어(요르단, 시리아 등지에서 사용)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사실 일주일에 2시간으로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자원봉사의 느낌에 가까워서 툭하면 수업이 취소되곤 했다.

그러던 중 친구를 통해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또 다른 무료 강좌를 발견했다. 그곳에서는 일주일에 2번, 2시간 동안 공식 아랍어에 대한 읽기, 말하기를 배우고 있으며. 덕분에 올해 2월이 끝날 즈음부터 아랍어를 아주 느리게나마 반쯤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00%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아랍어의 모음 발음은 ㅏ, ㅜ, ㅣ, ㅑ, ㅡ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단어에는 모음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금술사' 책 덕분에 유명해진 단어, "마크툽(مكتوب)"에서 글자로 표현된 모음은 'ㅜ'인 'و'하나뿐이다. 다행히도 교재에는 모음을 표기하는 기호(하라캇)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결국 단어를 알아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양쪽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복습 효과가 있어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불편하기도 하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랍어 종류의 복잡함부터 얘기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아랍어는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그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듯이 지역에 따라 구어체가 다르게 발전했고, 기존의 토착어와 섞인 곳도 있으며, 프랑스, 영국 등에 의해 지배된 적이 있는 경우에는 그 언어들 마저 흡수한 채 변화해왔다. 때문에 아랍어를 사용하는 멀리 떨어진 국가의 사람끼리는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현대 표준 아랍어라는 '푸스하'가 생겨났다. 구어체는 달라졌음에도 1500년 전 코란이 만들어졌던 당시의 문어체는 코란을 통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표준 아랍어인 푸스하가 정립되었고, 이는 학교, 뉴스, 신문에서 사용된다. 때문에 아랍에미리트에 사는 현지인의 경우에도 가정에서는 영어와 이마라티식 아랍어를 사용하고 학교에서 푸스하를 배운다고 한다. 문제는 이 푸스하가 문어체라는 것이다. 비록 UN 공식 언어이긴 하지만, 실제로 푸스하를 써서 대화를 하면 현지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이상하게 들린다고 한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두 가지 수업 중 한 곳에서는 요르단식 구어체를 배우고 있고, 나머지 한 곳에서는 푸스하를 배우고 있다. 다행히 그 둘이 매우 다른 것은 아니지만, 발음에 있어서 차이를 보일 때도 꽤 있다. 예를 들면, 푸스하에서 '너의 남편'은 '쟈우즈카'인 반면 요르단식 구어체에서는 '쟈우젝'인데, 결국 '쟈우ㅈ'까지는 동일하고 '너의'를 표현하는 방법이 '으카'와 '엑'으로 나뉘는 것이다. 하나도 외우기 벅찬데 왜 이런 일이!

그나저나 새로 들어온 아랍어 때문에 내 뇌의 뉴런이 재연결되는 중인지, 부쩍 한국어도, 영어도 더 힘들어졌다. 0개 국어의 삶에 깊은 공감 중.

하여튼 이틀 후,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위한 시험을 봐야 한다. 진짜 이게 뭐라고 어쩌다 보니 족보까지 손에 넘어왔는데, 그럼에도 공부하기가 싫다. 아마도 내일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시작할 수 있지 싶다.


벨리댄스

올해 친구의 추천으로 벨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벨리댄스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기존에 듣던 줌바 강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운동하는 곳을 옮겼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패키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런 공지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참여자가 3명 이상이 되지 않을 경우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강사는 어느새 4명으로 혼자 기준을 높여버렸다. 결국 어느 날, 메신저 상으로는 인원이 충족되어 열심히 택시를 타고 갔건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 강사는 수업을 취소해버렸다. 대체 나는 무슨 죄?

그렇게 아무 기대 없이 시작한 벨리댄스는 지금까지 들었던 수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강사는 앞만 보고 춤을 추고 사람들은 뒤에서 대충 따라 하는 그런 수업이 아닌,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가르쳐 준 후 전체적인 안무를 알려주고, 학생들이 춤을 추는 동안 개개인의 안무를 교정해주는 수업이었다. 그렇게 배운 벨리댄스는 너무나도 재밌다. 게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20년 넘게 나를 괴롭혔던 비 오기 전 왼쪽 어깨, 목관절이 아픈 증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벨리댄스의 기본 동작 중 '어깨 쉬미'라는 동작이 있는데, 설명을 하자면 종종 예능 프로에서 애교를 부리기 위해 어깨를 떠는 그 동작 정도로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애교를 겸비한 성격이 전혀 아니기에 사용할 일이 없었고, 처음 어깨 쉬미를 배울 때 그래도 움직일 줄 아는 오른쪽 어깨와는 달리, 전혀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 또는 앞뒤로 움직이려 했던 왼쪽 어깨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왼쪽 어깨에는 운동 신경이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너무나 난처한 표정을 짓자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내 어깨를 만져보더니 너무 굳어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시며 집에서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 이후로 집에서 강하나의 어깨 스트레칭을 통해 어깨를 풀고 선생님께 배운 방법을 통해서 연습을 했더니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어깨가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세상에! 어느샌가 20년간 나를 괴롭히던 그 아픔이 사라진 것이다. 그간 물리치료, 도수치료, 개인 PT, 요가, 개인 필라테스를 해도 사라지지 않던 그 문제가 이렇게 해결될 줄이야. 너무나도 다행이지만, 반면에 너무나도 허탈하다.

그리고 얼마 전엔, 비록 2분짜리지만 공연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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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어깨가 아니더라도 벨리댄스는 재밌다. 그리고 지난 공연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솔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다 떠나서 중동에서 배우는 벨리 댄스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신난다.


사진 & 여행 &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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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스팀 첫 번째 매거진에 내 사진이 실릴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다. 스팀잇을 통해 작년 내도록 사진의 세계를 알려주신 @hsuhouse0907님과, 피곤한데도 이곳까지 운전을 해준 남편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트립스팀 분들께도 :)

얼른 종이책으로 출판된 매거진을 내 손에 쥐고 싶지만, 아마도 잠시 한국을 들릴 이번 달 말쯤에야 가능할 것 같다. 작년에 아랍에미리트에 여행 왔던 @sunnyshiny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아마도 몇 분 정도는 뵙게 될 것 같다.

올해 들어서 인스타도 다시 시작했다. 이곳엔 스팀잇, 트립스팀 글에 사용했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개제 중인데, 다른 사람들의 역동적인 사진들을 보며 사진에 대한 욕심이 조금 더 생겼다. 하지만, 욕심만으로는 어떻게 될 수 없는 것인지 최근에 짧게 다녀온 인도 여행 사진을 아무리 다시 봐도 딱히 건질만한 게 없다. 사진은 운도 필요하지만, 그 짧은 찰나를 담을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함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으로는 실천하지 못했다.


골프

그 짧은 기간 동안 뭘 이렇게 많이 시작했나 싶기도 하다. 골프는 작년 가을부터 하려고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루다가 한 달 전쯤 드디어 시작했다. 15년 전쯤 친구에게 두 번 정도, 그리고 10년 전쯤에도 어쩌다 보니 코치분께 두 번 정도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더운 나라에서 갑자기 웬 골프인가 싶을 수 있지만, 이곳엔 의외로 골프장이 꽤 있다. 생각해보면, 처음 이 나라에 와서 머물렀던 호텔에서 봤던 바깥 풍경도 골프장이었다.

갑자기 골프를 시작한 것은 웬만한 건 한국보다 비싼 반면 유독 골프 비용만큼은 합리적이게 느껴져서이다. 남편과 함께 배우는 2달간의 골프 비용이 약 56만 원. 인당 한 달에 14만 원으로 연습장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그 가격이 더욱 인하된다고 한다. 더운 건 딱 질색이라 여름에는 다른 실내 운동을 하려 했지만, 특히 여름이 늦게 다가오는 올해는 어쩌면 골프를 계속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참고로 무제한 연습장 이용은, 아직 초보인 나에게 굉장히 허울뿐인 요소였다. 실수로 땅이라도 치고 나면 손가락이 아파서 한동안 클럽을 쥘 수 없었달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맨땅을 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


기타

이외에도 한동안은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학습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영어나 아랍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한국어는 어찌나 '조사'가 많던지. 은, 는, 이, 가는 물론이고, 친구가 보내준 한국어 용언 활용형을 보면서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이 외에도 또 다른 일을 벌였다. 그래서 요즘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우습게도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이다.

오늘 일기엔 이외에도 3~4월에 접했던 아부다비 문화 행사도 쓰려 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언제 한번 아랍에미리트 여행기로 정리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주는 남편님과, 부쩍 건강해진 첫째, 그리고 고맙게도 언제나 한결같은 둘째 고양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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