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 사는 나의 중국 친구가 보르도에서 현장 실습을 마치고 몇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그 친구는 굉장히 알뜰한 친구다. 절대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먹지 않는다. 비싸니까.. 밥 한끼 먹으려면 2~3일치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집에서 모임을 하는 편이다. 나도 카페는 자주가도 레스토랑은 두어달에 한번 특별한 날 정도만 가는 수준이다. 아무튼 그런 친구가 갑자기 레스토랑에 가자고 해서 오늘은 꼭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야흐로 쪼야의 레스토랑 가는 이야기! 뚜둥
친구가 어제부터 흥분하며 본인이 맛집을 알아 놓았으니 자기만 믿으라며 큰소리 뻥뻥치기에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외출이니 지옥의 주사위방 500팔로워 이벤트 당첨 된 분들께 보낼 엽서도 챙겼다. (집순이 특징 : 나갈일 생기면 한번에 몰아서 하기)
@kimsursa님
@flightsimulator님
@sunshineyaya7님
@omani02님
@rbaggo님
@gold2020님
(르바님, 골드님은 주소를 안 보내주셔서 일단 4분만 먼저 보내드렸습니다.)
우체국에 들르려고 일찍 나왔더니 시간이 좀 남았다. 오랜만에 윈도우 쇼핑을 좀 하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광장에 몹쓸 흉물이 생겨 있는 걸 발견했다. 누가 광장 잔디에 빨대 꽂아 둔거 같다...이 동네 미대 애들은 너무 그로데스크하다....
빨대를 뒤로하고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의 방가방가를 붕가붕가 아니다 하고 바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젠장 휴가다..........
안내문을 보니 별 이유는 없지만 2주 동안 휴가다! 라고 써있었다. 이노무 프랑스. (너무 충격적이라 사진을 못찍었다. 아쉽다...부들부들)
일단 배고프니깐 자주 가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태리 레스토랑인데 기사식당처럼 오늘의 메뉴를 싸게 판다.(사실 어디가나 있다) 오늘의 메뉴는 8.5유로, 오늘의 메뉴 + 디저트는 11.5유로이다. 웬일로 짜장면만 먹는 친구가 '난 탕수육'을 외쳤다. 이때다 싶어 오늘을 사치의 날로 정하고 '나도 탕수육'을 외쳤다. 디저트 먹을 생각에 흥분하며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메뉴는 기대 이하였다. 이 집은 파스타와 피자가 맛있는데.. 피자 먹을 껄 하는 후회가 끝나기도 전에 친구가 밥먹다 돌을 찾아냈다. 이빨 안나간게 다행이다 싶었다. 서버한테 말했더니 쿨하게 돌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_-
아무튼 우리는 접시 위의 소스까지 바게트 빵으로 싹싹 긁어 먹었다. 맛 없어도 많이 먹을 순 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디저트가 나왔다. 아..디저트도 실망이다. 반쯤 먹고 남겼는데 친구가 내가 남긴 것까지 다 먹었다. 역시 우린 양으로 승부할 수 있는 여자들이다.
다 먹고 가려니 서버가 와서 '사요나라' 라고 말한다. 음식도 맛없는데 일본인 취급을 하다니 부들부들하며 친.절.하.게 '다시 말해봐' 라고 했더니 몹시 당황하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줄행랑 쳤다. 심지어 그걸 들은 중국 친구는 '우리가 한국인인줄 알았나봐' 라며 좋아했다. 그래서 또다시 부들부들하며 친.절.하.게 '저거 일본말이다' 라고 알려줬다. 이 집이랑 이제 바이 짜이찌엔이다!
배가 불러서 윈도우 쇼핑을 하기로 했다. 책도 보고 옷도 보고 한참 돌아다니다가 커피 한잔 하기 위해 단골 카페에 갔으나 오후 3시까지 점심 먹는 프랑스인들로 꽉 차서 카페 전문점인 일리 카페로 향했다. 일리 카페에 초콜렛차(코코아 수준이 아니다 정말 녹인 초콜렛이 나온다) 위에 생크림을 올린 메뉴가 생겼다. 맛있어 보여서 잠시 고민했다. 우리가 고민하자 커피 위에 생크림 올린 것도 있다며 서버가 열띤 설명을 했다. 그리고 우린 그냥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서버도 나도 친구도 동시에 빵터져서 서로를 보며 한참 웃었다.
우린 몇시간 동안 밀린 얘기들을 하며 폭풍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친구가 나 주려고 챙겨 온 선물도 받았다. 고급 와인이닷! +,.+ 친구는 와인을 공부하는데 술을 잘 못마신다. 그래서 매번 챙겨오는 와인은 내 몫이다. 흐흐흐. 그런 좋은 친구도 중국으로 돌아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올 여름 이후로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이별을 많이 해도 이별은 늘 쉽지 않다.
덧, 오늘 집에 왔더니 마침 흐네가 있어서 그동안 밀린 얘기들을 했다. 요 며칠 흐네가 요가 교실 다니느라 새벽에 일찍 나갔다가 밤 늦게 돌아 온 탓에 밀린 얘기들이 좀 있었다. 드디어 집 문제가 확정 됐다고 한다. 흐네가 들려 준 얘기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 동네 대부분을 밀어 버리고 여기 커다란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그 아파트에 흐네도 들어가 살거라고 한다. 하파엘은 집을 파는 것에 대해 끝까지 반대 했었지만 그녀도 종국엔 수락했다고 한다. 청사진도 보여줬다.
내가 이 예쁜집이 사라지는게 너무 슬프다고 했더니 관리가 너무 힘들다고 맞섰다. 봄철에 송충이 잡는 것도 이제 못하겠고 관리비도 너무 비싸고 여러모로 복잡하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하긴 내가 집주인이면 피곤할 거 같긴 하다. 아무튼 이곳은 곧 내 추억 속에만 존재하게 될 예정이다.
우울해서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