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반가운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그 직장에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점잖고 소탈한 ‘전 직장 동료’의 입에서 그가 참 ‘여전히’ 무례하다는 말이 나왔다. 나 역시 그의 ‘무례함’이 기억난다.
_
그는 장난(재치)과 무례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전형적인 준準사이코패스였다. 그는 반사회적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사회적 사이코패스에 가까워서 사회(직장) 생활이 가능했다.
그의 '사이코패스적 버릇' 중 하나는, 상대방의 질문을 질문으로 다시 받아치며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똑똑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약한’ 상대를 말로 곤경에 빠뜨리는 무례한 행위를 즐겼다.
그에게 있어서 점잖고 소탈하고 겸손한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약한’ 사람이다. 그는 ‘약한’ 사람을 공격하며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는 또한 그 ‘공격’을 ‘재치’라고 생각한다. 무례함과 비공감은 비슷하다. 그는 남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재치(장난)’가 무례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그는 나름대로 ‘똑똑’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반응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눈치를 보면서) ‘무례(재치)’의 수준을 조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_
영화 ‘dirt’에서도 자세히 묘사된 록커들의 반사회적 행동이 ‘낭만’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어설픈 록커'들은 그 만행(반사회적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반사회적 행동’을 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던 록커들은 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자폐’에 가까웠다는 분석이 있다. ‘자폐’는 흔히 알려진 바와 반대로 오히려 뛰어난 공감능력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너무 과한 공감 능력이 오히려 고통스러워서 그 고통을 막고자 스스로 사회에 벽을 쌓는다.
훌륭한 음악을 남긴 ‘거친’ 록커는 공감력이 뛰어난 준자폐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비뚤어진 공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가학적 행동을 하지만 뛰어난 공감력 때문에 상대의 고통을 그대로 느낀다. 그렇다면 그들은 상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즐기는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있지만 훌륭한 곡을 남긴 뮤지션은 아주 드문 것처럼, ‘거친 록커’들은 대부분 ‘준자폐’가 아닌 ‘준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준자폐’와 ‘준사이코패스’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서로 정반대다. 공감능력이 없는 준사이코패스가 훨씬 큰 해악을 끼친다.
공감력이 없는 ‘이성적인’ 사이코패스 뮤지션은 기술적으로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며 얼핏 들으면 유니크한 곡을 만든다. 하지만 그 곡이 걸작으로 오래 남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특히 소시오패스)는 공감을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얼핏 보면 공감력이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감력이 없는 사이코패스 뮤지션이 만드는 ‘유니크’한 곡은 유니크함을 이성적으로 ‘연기한(흉내 낸)’ 것이라서, ‘감정’이 담긴 대중들에게 오래 남는 명곡을 만들지는 못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