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경험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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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짧은 에세이 한 편을 쓰게 하고, 그 글이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기존에 있는 글꼴(폰트)만 사용해서 글을 배치하는 디자인 실습이 있다.

실제로 겪은 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깊게 새겨진 경험을 써보라고 학생들에게 권장한다. 그래야 작업을 할 때 글을 깊게 파악할 수 있고, 더욱 정성이 담길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실습을 진행하고 보니 그렇게 '재미있는' 실습은 아니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힘들었던 경험에 대한 글이 가장 많았다. 학생들의 글을 읽을 때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갈색 뿔테 안경을 쓴 고루한 국어 선생님이 된 기분으로 문장을 하나씩 마음에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아픈 경험이 그대로 송곳이 되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학생들의 글은 재수할 때 힘들었던 나의 기억 역시 생생하게 소환했다.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고 싶어서 디자인을 택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힘들어야만 했는지. 30여 년이 지나도 그 고통은 전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굳이 아픔을 들춰내는 실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예술가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편견'이 있다. 나 역시 예전에는 그 말에 동감했지만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의 대담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곡가 윤이상은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간첩 혐의를 받고 한국의 정보원에게 납치되어 서울로 끌려온다.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집 '윤이상 상처 받은 용'에 그가 받았던 모진 고문들과 수감생활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손발을 통나무에 묶어 매달고 얼굴 위에 흠뻑 젖은 천을 덮고 물을 뿌리는 고문과 구타가 반복되었다. 윤이상은 고통과 절망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재판에서 무기형을 언도받았지만 각국의 예술가들과 독일 정부의 구명노력으로 '대통령 특사' 형태로 풀려나게 된다. 당시의 대통령은 박정희였다.(윤이상은 박정희와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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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중.

루이제 린저
_ 저는 제 옥중 시절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몇 가지 중요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당신은 어때요?

윤이상
_ 나는 그런 건 모두 경험하지 않았던 편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제 린저
_ 이런 엄청난 괴로운 경험이 당신의 예술을 더욱 넓은 차원으로 이끌었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윤이상
_ 예술은 그런 경험이 있든 없든 그것과는 독립된 것입니다.

괴로운 경험과 예술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