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늙은 수컷 사피엔스

Words
313
Reading
2 min
Listen
Play
8y

20여 년 전에는 이 동네의 길고양이들도 사람을 만나면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요즘에는 길고양이들이 한결 여유로와졌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직은 일본의 길고양이들처럼 여유롭지는 않지만 이 동네의 길고양이들은 한국의 어떤 동네보다 쾌적한 삶을 누리는 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고양이를 만나면 '귀엽다며' 달려드는 인간들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많이 줄었다. 옆에 고양이가 지나가면 고양이를 향해 잠시 좋은 표정을 지으며 지나간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방법이 이젠 좀 세련되어졌다고나 할까. 같은 동네에(지구에) 사는 동등한 생명체로 인정하는 모습이다.

'귀엽다'는 감정은 때로는 부정적일 수 있는데, 상대를 동등한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보다 연약한 아래 계층으로 낮춰보는 생각이 깃들기도 한다. 고양이나 개를 놀리는 짓궂은 장난을 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자랑스럽게 올리는 인간들은 스스로 고양이와 개를 '귀엽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귀여워'할 줄은 알지만 존중하거나 사랑할 줄은 모른다. 그들에게 개나 고양이는 반려 생명체가 아니라 애완 생명체다. 자신을 위로해주고 재미있게 해주는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이다.

//
길을 걸어가는데 자주 보던 고양이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간다. 그 고양이는 살짝 경계하며 길을 걷고 있지만 나름 여유롭게 지나간다. 지나는 사람들도 그 고양이를 호감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굳이 달려들면서 '귀여워'하지는 않는다. 길거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대하면서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70대 정도로 보이는 한 수컷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그는 길 한쪽에 잠시 서있는 고양이를 보더니 발을 강하게 구르며 위협한다. 고양이는 놀라서 달아났다. 그 늙은 수컷 사피엔스에게 고양이는 흑사병을 옮기는 생쥐와 똑같이 보이는 모양이다.

예전에도 늙은 수컷 사피엔스가 고양이를 위협하며 쫓아내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 수컷 사피엔스들은 주로 자신들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더욱 과장되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려는 습성이다. 그 수컷 사피엔스들은 당연히 자신보다 강한 개체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수컷 사피엔스들은 보통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집단 속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자신이 이끄는 무리(가족)에서는 아랫 개체들(아내와 자식)에게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수컷 사피엔스가 모여있는 무리에서는 알파 수컷에게 복종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많은 수컷 사피엔스들이 홀로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면 이 세상은 참 살기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