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이 봉건적 가족자본주의 사회에서 꽤 특이한 '상품'이다. 생필품이 아님에도, 대학을 구매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척 불편해진다. 교육환경, 커리큘럼, 교수의 실력 같은 상품의 질보다 브랜드가 우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품의 질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인지도가 매우 낮아도 상품(대학)은 언제나 완판 된다.
<사례 1>
몇 년만에 복학을 신청한 학생이 있다. 전공과 상관없는 물류창고에서 일하면서 나름 베테랑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가 복학하려는 이유는 '전문학사라도 없으면 이 사회에서 살기가 불편해서'였다. 그의 목적은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학위를 받는 것이다. 취업률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된 대학은, 1~2번의 출석과 등록금만으로 그에게 학위를 판매할 것이다.
<사례 2>
자퇴를 신청한 그 학생은 성실하고 재능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성적관리를 못해서 이 대학에 들어왔다. 이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편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너무 엉망이다. 커리큘럼, 기자재, 학교시설, 교수의 실력, 동료학생들의 분위기, 무능한 행정 등.
그 학생은 집안이 가난했다. 때문에 이 대학에 내는 등록금이 더욱 아깝게 느껴진다. 피 같은 돈이 학교 바닥에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었다. 결국 그 학생은 자퇴를 하고 학점은행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 이 학교에서 학위를 구입할 것이다.
<사례 3>
어떤 학생은 생존을 위해 알바를 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어떤 학생은 여행을 위해, 혹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알바를 한다. 이 두 학생이 내는 등록금의 액수는 똑같지만 각자가 체감하는 액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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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을 낼 돈이 없으면 대학을 가지 않으면 된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이 사회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이 사회는 여전히 능력이 아니라 학위가 없으면 살기가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말은 꽤 부드러운 표현이다. 특히 가난할수록 더욱 불편하다. 독점적이며(경쟁이 적고), 생필품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제품의 질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는 상품을 만드는 회사가(대학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까지 받는다.
대학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꽤 특이한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