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혐오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인간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한다. 3명 이상 모이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다.
인간 혐오자는 여성 1, 남성 9의 비율로 남성을 더 혐오한다.
테스토스테론을 주체하지 못하는 과장된 말투와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역겹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런 남자들과 연인이나 부부가 되어 억압받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관습은 기이할 따름이다.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가래 뱉는 모습, ‘남자가 말이야, 여자가 말이야’라고 거들먹거리는 모습, 걸어 다니며 담배 피우는 모습, 세게 보이려 어깨를 추켜세운 모습, 남을 비하하며 자신을 높이는 농담을 하는 모습, 미투 운동 무서워서 어디 살겠냐며 비아냥거리는 모습.
‘아랫’ 사람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비열한 모습도, ‘윗’ 사람에게 형님 형님 거리는 비굴한 모습도 역겹다.
저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례하며 콤플렉스와 자격지심에 절어있는 나약한 수컷들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길거리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유를 누린다.
극소수 기득권층에게 지배받으며 겨우 삶을 연명하는 2등 시민인 주제에, 자신을 돌아봐주고 돌봐주는 바로 옆의 여자를 3등 시민으로 억압하고 지배하여,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자신이 받는 억압과 지배를 그대로 여자에게 되돌림으로서 자신이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인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이 얼마나 비열하고 단세포적이며 무지한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앞으로도 수십 년간 이런 인간들과 함께 길거리를 걷고 말을 섞고 교류를 해야만 한다니, 끔찍한 일이다.
인간 혐오자는 이런 비합리적인 세상을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바뀌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합리가 판을 친다는 것은 어떤 뚜렷한 의도와 목적이 관여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신은 채권자이고 인간은 채무자다. 채무자인 인간은 안간힘을 쓰면서 그 빚을 줄이기 위해 (갚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들끼리 빚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빚을 떠넘기는 행위가 지배와 피지배를 만들었다. 부채가 인간을 통치한다.
나약하고 야비한 2등 시민 수컷들은 그 빚을 여자들에게 떠넘기며 자신들만 빚쟁이 신세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잔인하면서도 인자한 신은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채무자인 인간들이 과연 자신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지.
빚을 서로 떠넘기지 말고 거부해야 한다. 처음부터 빚은 없었다고 지급 거절을 선언해야 한다. 빚을 떠넘길 줄만 아는 저 나약하고 비열한 수컷을 설득하고 꾸짖고 징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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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노파심.
이 글은 도스토에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고, 그 형식을(문투文套를) 따라한 소설 형식의 '독후감'입니다. '인간 혐오자'는 가상의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