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것이 보이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으면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혹은 음악)는 휴대용 귀마개를 언제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막을 수 없다. 원하지 않는 소리는 악취를 풍기며 귀를 파고든다.
청중은 음악(소리)에 저항하고 거부할 수 없다. 그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돛대에 묶여 꼼짝없이 세이렌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오디세우스가 되어 그 음악에 복종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치는 수용자들에게 강제로 음악을 들려주었다. 노동을 고취시키고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의 그 아름다운 음악은 혐오스러웠다. 수용자들은 그 혐오스러운 음악을 거부할 수 없다. 복종해야 했다.
버스킹이 끔찍한 것은 이 때문이다.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바로 뒤의 휴대폰 매장에서 나를 공격하는 힙합 인양 알앤비 인양하는 음악(소음)도 끔찍하다.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러 간 술집에서 어떤 무리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즉흥 잼 세션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음악(소음)은 테러리스트의 폭탄과 다를 바 없다.
음악을 좋아할수록 음악은 그에 비례해서 더욱 고통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