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야만의 효율을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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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2.

'최종 해결책'(유대인의 물리적 절멸을 뜻하는 행정 단어)은 일상적인 관료제적 절차의 산물이었다. 수단과 목적에 대한 계산, 예산의 수지 타산, 보편적 규칙의 적용 등이 능력 있는 실무자들에 의해서 '합리적'이고 치밀하며 효율적으로 만들어졌다.

'합리적인 규율에 의해 공정하게 운영되는 조직'은 믿음직하고 가치 있어 보인다. 개인이 그런 조직에 속하게 되면 자신의 개인적 견해와 선호를 드러내는 것보다 그 조직에 대한 동일시가 커진다. 이런 조직에게 자신을 희생하는 것, 즉 개인적 양심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높은 도덕적 미덕이 된다.

'합리적인 규율에 의해 공정하게 운영되는 조직'은 '문명화'된 사회에만 존재한다.(만들어진다)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은 행정능력면에서 고도로 '문명화'된 국가였다. 문명화된 '선량한'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외면하고 협조했다. 문명이 오히려 야만을 효율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조직을 합리적인 규율에 의해 공정하게 운영하지 못하면 그 조직에 속한 개인은 그 조직을 동일시하지 않는다(그 조직을 따르지 않는다) 문명화되지 못한 사회에서의 그런 조직은 합리적 규율과 공정한 운영 대신, 공포를 이용한다.

예컨대 현대의 한국사회는 실직의 공포를 이용해 개인을 조직에 순응하게 만든다. 고대의 군대는 군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의 목을 베었다. 병사들은 공포에 굴복하여 조직을 따랐다. 광주학살 당시 일반 군대가 아닌 공수부대를 보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공포를 이용해 군인들을 순응하게 만들었고 그 군인들을 앞세워 시민들을 굴복시키려 했다.

아직까지 문명화되지 못한 한국사회는 오히려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공포'에 굴복하지만 않는다면 불공정하고 무능하며 비합리적인 조직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