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거부拒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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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파르그가 말한 ‘게으를 권리’로서의 ‘게으름’.

노동 분업의 의미를 거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정치적 행동을 ‘게으름’이라고 부른다.

게으른 행동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존 조건과 관련해서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게으른 행동은 지배적 권력관계, 임금노동에 대한 주체의 거부를 표현한다.

“우리가 여전히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존재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마르셀 뒤샹.

  • <부채 통치> 281~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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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미’로 바람직한 일꾼의 순위를 뽑은 적이 있다.

  1. 능력 있고 게으른
  2. 능력 있고 부지런한
  3. 능력 없고 게으른
  4. 능력 없고 부지런한

일반적으로는 2번 ‘능력 있고 부지런한’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재미’가 아닌, 이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존 조건과 관련하여 순위를 고쳐보면,

  1. 능력 있고 게으른
  2. 능력 없고 게으른
  3. 능력 없고 부지런한
  4. 능력 있고 부지런한

‘능력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 이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해악을 끼친다. 그들은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거부하지 않고 적극 수용하는 동시에 극소수 채권자의 이득을 위한 사회 시스템을 강화시키는데 적극적으로 부역한다.

조영남의 '예술'이 '비난'이 아닌 '비판'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법원의 판결문에서는 한 줄도 볼 수 없는 것은, 법원은 ‘부르주아 권력’의 이득을 지키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능력 있고 부지런한' 조영남은, 금융자본주의 사회의 예술을 ‘생존을 위한 노동’, ‘존재하기 위한 노동’으로 굳히는데 더욱 기여했다. 그것도 마르셀 뒤샹의 방법으로.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를 이은 것은 마르셀 뒤샹 같은 예술가들이다.

// 덧. 노파심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나태함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며 지배적 권력관계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