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멋, 한국인의 삶 11편] - 칠거지악과 삼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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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 송나라 시대에 '서긍' 이라는 사람이 지은 고려도경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러도경은 고려인들의 생활문화 풍습등을 기록한 고려지역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중에는, 고려인들의 잦은 이혼풍습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나오는데, 이를 토대로 하여 생각해보면 조선시대보다는 고려시대가 혼인의 풍습이나 남녀지사등에 대해서 개방적인 면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은, 그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출가외인' 이라는 개념이 강해서 지금처럼 이혼이라는 것이 아주 흔하지 않은 문화제도라는 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조선시대에도 이혼이라는 것이 없었을까?

여성에게 적용되는 '출가외인' 이라는 말이 있어서, 죽어도 그 가문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어야 했다면 이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문헌상 기록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혼' 이라는 단어 대신에 , '출저' , '휴기' , '종부가매' 등의 말로서 대체되어서 사용되어졌다고 하니, 그 시대에도 엄연히 이혼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칠거지악이라고 하여, 여자가 '출저' 즉 이혼을 강제로 당하는 사유에 대해서 규정을 하기를,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음란한 짓을 하거나, 시부모를 잘 모시지 않거나, 수다스럽거나, 손버릇이 거칠거나, 질투가 심하거나, 악병이 들거나 하면 강제로 시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 칠거지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중국의 진나라 시대 이전의 문헌인 '대대례기' 에도 등장을 한다고 하니, 그 역사가 조선시대 이전부터도 아주 오랜된 폐습임을 알 수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남자가 이혼을 당하는 경우는, 처를 노비로 팔거나 장인장모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장모와 사통을 하였을 때는 여자측에서 이혼을 요구 할 수 있었고, 또는 본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장가를 가거나 혹은 첩을 본처로 앉히는 경우에 한하여 국가에서 개입하여 강제로 이혼을 시킬 수 있었다고 하니, 남자와 여자에게 적용되는 이혼률이 정말 불공평하기는 불공평하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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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남자측에서 이혼사유에 해당될 만한 짓을 그렇게까지 드러내놓고 할 만한 경우도 없을 뿐더러, 실제로 그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남성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던가. 반면에 여자에게 적용되는 이혼률은 아주 흔하게 적용될 수 있고 조금만 잘못해도 핑계거리를 쉽게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것들만을 강제하고 있었으니, 여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은 분명했다.

더구나 일방적으로 남자가 이혼을 강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사유중에 '대명률' 이라는 것이 있었으니, 한마디로 "지아비가 원하면 이혼한다" 이다. 시집간 여자가 칠거지악을 어기지도 않고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지아비 한마디에 그날부로 시집에서 쫓겨나게 만들어버리는 '대명률' 이라는 것을 적용시키고 있었다니, 여자를 우습게 보아도 보통 우습게 보는 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삼불거'라고 하여 남자가 여자를 시집에서 내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 아내가 돌아가서 의탁할 친정이 없는 경우에, 시집온 후에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지내어 준 경우, 혼일할 때는 시집이 가난했지만 같이 살면서 시집이 부유해진 경우 등에는 남자가 강제로 이혼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을 하였다.

조선은 예법을 아주 중히 여기던 시대였으니, 남자가 이 삼불거를 어기게 되면 형벌적용이 아주 엄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따져보라, 설령 삼불거가 있다고 해도 이것은 일방적으로 남성중심의 사회적 관습일 뿐이지, 여자를 마치 개인 소유물이나 하찮은 물건쯤으로 천대하는 비인격적 차별적 관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기사 과거시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흐름의 중심은 남성중심으로만 남성우월주의적 가치관이 지배적이었으니, 여자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으니까,

그러나 지금시대에는 여자가 친정집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시댁보다 친정집을 더 많이 가게되는 시대일 뿐 아니라, 여자에게 적용되는 칠거지악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에 적용되는 칠거지악의 시대이니, 남녀평등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우대의 시대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칠거지악과 삼불거에서 우리선조들의 지혜를 한 가지 엿볼 수 있는 것은, 과거시대의 다른 문화권에서도 여성천대문화가 팽배하였지만 여성들의 난처한 입장을 생각해서 공식적으로 출가요청을 거부할 삼불거와 같은 명분을 같이 적용시키고 있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 역시 시대적 문화의 발전상이 여성을 하대하고 남성우월주의적 문화가치관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삼불거를 규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래도 과거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했을 때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합리성이 있는 제도" 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존여비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했을 때에, 다른 나라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삼불거를 규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상당히 인륜적이고도 합리적인 조치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눈높이에서는 그 삼불거라고 하는 것 역시 터무니 없을 정도로 황당한 문화적 제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시대는, 남존여비가 아니라 여존남비의 시대로 계속해서 더 강하게 접어들면서 남성에게 요구되어지는 칠거지악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더 강하게 인정받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보완책으로서 적용되어질, 이혼당하는 남성을 구제하기 위한 삼불거가 과연 어떻게 재해석되어서 새롭게 이 시대에 등장을 할지도 몹시 궁금하다.

예를 들어서, 첫째 돈을 아주 많이 잘 벌어다 주면 이혼당하지 않는다, 둘째 밤일을 아주 정성스럽게 지극하게 잘 해주면 이혼당하지 않는다, 셋째 마눌님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아주 말을 잘듣고 군소리나 대꾸를 전혀 안하면 이혼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현대판 삼불거가 통념적으로 만들어져서 적용이 되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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