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24. 느낌과 직관, 그것에 대한 망상

yangmok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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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름의 감각과 직관으로 또는 촉으로 상대의 첫 인상을 빠르게
느낄수 있고, 그 인상에 기초해서 그의 내면과 성격과 또는 행동양식을
알아 볼 수 있다고, 어느정도는 통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자신의 직관 또는 촉이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 자기가 느끼고 있는 느낌에 거의 확신을 갖고,
빠른 판단과 빠른 반응을 보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떤 사람과 상황을
나름의 분류기준에 따라 정리하는 것을 본다.

나이가 어느정도 연륜이라고 부를만큼 지극해 지면 각자가 사람에 대한
감별사를 자임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허나 한 가지 짚어 보고
싶은 게 있다. 그런 확신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인간 감별사'들은 "그냥 그런 줄 알아, 그냥 알아, 느낌이 온다구,
내 말이 맞다니까, 내 말 믿어, 그것 봐 그런줄 알어" 정도의 말 만을 할 뿐일 것이다.
이것을 다른말로 간단히 하면, "근거없음이지만 느낌은 있어"라는 비상식적인
과학적 답변서에 불과한 말들이다.

지금껏 수 많은 감별사들의 태도를 접하다가 이제는 내가, 그냥 감별사로서의
태도를 가지고서 하는 말인지, 아님 나름의 "과학적"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를 구분하는 "감별사를 감별하는 전문 감별사"로 성장하게 된 것 같다.
감별사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의 말이 논리적인지 아닌지에 촛점을 맞추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직관이란 것은 다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논리적 추론이 반복되다가 쌓인 결과물이지,
차원의 세계를 들락날락 할 정도의 신통력과 특이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직관이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소수의 경우일 뿐이다.
간혹 일반적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전문가급의 직관을 가진 경우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 온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관은 얼마만큼의 신뢰감으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이 놓여진 정신적, 제도적 환경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에 한해서이다.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분들의 지혜가 길러진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염두에 두고 경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의 노인들 중에서도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 박정희 정권을 겪은 사람들이
대체로 유사한 인생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것만을 보고 듣고 배우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에 축적되어져 있는 정보는 모두 비슷한 지혜의 창출근원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 역시나
그 부모들과 유사한 직관을 갖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모말을 들을 걸 그랬어"라고 말들을 많이 하는 것은 자신이 부모의
아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장착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은 헌 것의, 묵은 것의 축적물이, 이미 우상화되어서 강력히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자신 스스로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들은 언제나 시들시들하고
오히려 오래된 자기의 확신은 찬란하게 빛을 계속 발하면서 새로운 빛의 발현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지겹도록 말이다.

첫느낌, 나의 안목, 과연 맞을까? 난 정말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의 육감은 감각적 차원에선 설명하기 힘든 그런 영험한 것일까?
딱 느낌이 와? 진짜로?

뭐라고 생각하던,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기존의 축적되어져 있는 것만으로
자기복제만을 자꾸하지 말고 가만히 세상의 시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계속해야 한다. 또 다른 전문가들이 하는 말도 열심히 경청해야 한다.
나의 정신적, 지적 환경은 계속 수리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 "감"의
정확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딱 보고 알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진짜로 '도'를 닦아야 한다. 아주 겸손하게, 겸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