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현상 중의 하나가 전화받고 걸기를 두려워하는 콜포비아 현상이라고 한다. 이 현상을 해명하는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대면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문자메시지 커뮤니티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하여 직접적인 인간대 인간의 상호작용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온라인 상담치료센터의 전문가에 의하면 "메시지는 생각하면서 천천히 답장을 보낼 수 있지만, 전화는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반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현상의 원인을 개인주의의 확산을 원인으로 보기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한 두 자녀를 둔 세대가 많기 때문에 대인관계 기술이 부족하고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가 강해서, 전화통화를 하면서까지 불편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가면갈수록 인간사회의 진화발전은 점점 더 직접적인 인간대 인간의 대면접촉을 회피하려는 쪽으로 변화되어져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안에는 분명히 상호간의 관계발전이 결코 긍정적이지도 못할 뿐더러 복잡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주는 불편함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이기 때문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의 진화 발전과정은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시켜가느냐에 따른 관계 형성 중심의 문화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가장 핵심적이고도 필수불가결한 소통의 수단이 육체의 언어발성기능인 입을 통해서 말을 하고 귀로 남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써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전지구적으로 문맹이 퇴치되어진 겨우 몇백년 안팎에 국한된 발전일 뿐이다.
그래서 입을 통해서 말을 하면서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을 하고, 서서히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이 현대문명의 발전과 더불어서 가미가 되어져 왔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글로써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이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능력이 되어져 가고 있음은 부정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사람이 가급적 말을 적게 하면서도, 더 풍부하고 상세한 의사소통을 가능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각종 커뮤니케이션 지향적인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음이니, 시대가 가면 갈수록 인간의 직접 발성능력은 점점 퇴화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흔히 인간의 말은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 있다라는 설명을 하지만, 이 말은 역설적으로는 모든 분란과 다툼과 갈등의 원인도 결국 말에서 시작된다는 설명과 동일한 것이 된다. 하지만 기술적 진보로 직접적인 말하기 기능을 거치지 않고도 다양한 감정과 기분과 생각을 남들에게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의사를 전달받을 수 있는 기술이 실제로 등장한다면, 그에 따른 인류문화의 양상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명수준으로 진화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도 같다.
어쩌면 그런 세상에서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여러가지 인간적인 삶의 갈등이나 모순적인 사건들도 대폭 줄어드는 장점도 있겠지만, 인간적인 삶의 묘미라는 것이 갈등과 갈등을 풀어가고 서로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환상을 품고서 낯선 상대를 처음 접할 수 있는 짜릿함이라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쩌면 이것은 구시대의 문화적 산물로만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남성적 중심의 문화가치관이 지배하던 양적 팽창의 시대에는, 사람의 말투와 목소리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우렁차고 힘있고 조리있고 지식인다운 말을 잘 하는 것은 아주 각광받는 자기의 표현방법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중심의 감성적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어오면서 이제는 말하는 능력에 있어서 더 중요하게 각광받는 것은 상냥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는 능력이 더 우대받는 시대로 변화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마저도 아예 가급적 직접적인 발성능력을 거치지 않고 짧은 문자와 이모티콘과 다양한 글씨체 표현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콜포비아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아마도 다음세대에는 모두가 에너지적 의사소통이나 일명 텔레파시와 같은 비물질적 의사소통방식, 혹은 축약형문자 사용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단축형 의사소통의 시대로 더욱 더 진화발전해가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고전문학에서 등장하듯이 서로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열어간다는 사랑의 공식 역시도 다음 시대에는 구시대적인 혹은 원시적인 시대의 문화적 산물이었을 뿐이라고 치부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1970년에 상영되었던 혹성탈출 2편[ (지하도시의 음모)Beneath.The.Planet.Of.The.Apes.1970 ] 에서는 지구로 살아서 귀환한 우주비행사가 지하도시를 찾아내어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우연하게 생존인류의 후손과 마주치지만 처음에는 상대에게서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한다. 주인공은 영어로 말을 하면서 자기의 출신과 이름 등을 이야기하지만, 상대방은 묵묵부답이고 그냥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이다.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그 상대가 주인공에게 말을 하기를 " 언어발성기관을 이용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은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지요. 저희들은 이미 그 기능을 오래전부터 사용해오지 않고 있답니다. 저희는 그냥 텔레파시로만 의사소통을 합니다.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신체의 언어기관을 이용해서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서로간의 오해와 갈등의 소지가 거의 없지요"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무려 50년전의 영화이지만, 이 영화속의 한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기도 한데, 어쩌면 인류의 진화발전의 과정에서 분명히 어느 시점부터는 직접적인 발성기관을 통해서 말을 주고 받는 기능자체가 아예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만 인식되어지고 아예 그러한 기능을 서서히 사용하지 않는 문명의 수준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이미 기정사실로 정해져 있는 진화발전의 법칙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