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솔직히 한국에서 여자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안 할 수 있어요?"
이 아이는 오버워치를 좋아한다. 서울 다이네스티라는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그룹 팬이라고 한다. 이 그룹의 굿즈를 사고, 그룹 멤버들의 사진을 따로 모으고, 실시간 방송을 챙겨 볼 만큼 팬이란다.
"제가 게임 할 때 보이스 키고 말하면 남자들이 저한테 뭐라는 줄 알아요? 목소리 예쁘다 사귀자, X년부터 온갖 성희롱을 다 들어요. 그리고 제가 서울 다이네스티 팬이라고 했잖아요. 그냥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서갈이라고 불려요."
"서갈? 서울 메갈?"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네. 저는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느니 차라리 서갈, 메갈할래요. 그게 더 나아요.”
“장담하는데, 걔네는 메갈이 정확히 뭔지도 모를 걸. 기껏 한다는 말은 아마 꼴페미 정도 일거야. 그게 뭔 지 정확히 설명하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
“그리고 게임을 할 때 그래도 제 편을 들어주는 남자분이 한 명쯤은 있어요. 그 분이랑 한 팀을 먹으면 다른 남자들이 그 남자분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보빨러요, 보빨러.”
아이가 탄식을 하며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성희롱도 얼마나 많은데요. 저 중학교때 체육선생이 유독 저한테만 어깨동무 하고, 볼 꼬집고 그랬어요. 아 더러워.”
그 역겨운 체육 선생의 행동들을 나에게 쭉 늘여놓았다.
"저는 진짜 이해가 안가요. 남자들이 된장녀, 김치녀 같은 단어에 심각성 느꼈었어요? 왜 고작 한남이라는 단어에 광광거려요?"
몸서리를 치며 말하는 아이의 나이는, 17살.
“조민기의 죽음을 안타깝다고 하는 게 제일 어이 없어.”
난을 뜯어서 커리에 찍어 먹으며 A가 말했다.
“걔네들 심리가 뭔 줄 알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같잖은 소리 하는데 그 이면에는 말이야, 미투 운동을 불편해 하는 심리가 깔려 있어. 걔들이 사실 관심 있는 건 인간 조민기의 자살이 아니라 성범죄자 조민기의 자살이야. 걔들은 지금까지의 성범죄 피해자들의 수많은 자살은 신경도 안 써.”
달달한 망고 라시를 넘기며 내가 한 말이다.
"남자가 여자 성추행하면 여자가 꽃뱀일 수도 있다고 X나 이성적인 척 하는데 남녀 바뀐 상황에서는.. (코웃음)"
B가 한 말에 A와 나는 자지러졌다.
장소는 학교 근처의 인도 음식점.
“선생님, 저 진짜 서러워서 울 뻔 했어요.”
“응? 왜? 무슨 일 있었어?”
“저 버스 타고 오는데 내리려고 벨 눌렀었거든요. 근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문을 안열어주고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 거예요. 그래서 문 열어달라고 했더니 길 한복판에서 세워주고 그냥 가버렸거든요? 짜증나서 엄마한테 전화 했었는데 엄마 옆에 아빠가 있었나봐요. 아빠가 갑자기 전화 바꾸시더니 저한테 엄청 화를 내는거예요.”
“너한테? 왜?”
“몰라요, 위험하게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막 화내요. 짜증나 죽겠어요. 저한테 엄청 화내셔서 저 진짜 울 뻔 했어요.”
“위험하다는 이유로 화내신거야?”
“네.”
내가 이 학생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여전히 우리 아버지들은 세상의 딸들이 밤길이나 외진 곳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없게 된 사회적 배경, 그 원인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피해자들(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아버지도 그럴 것이란 것은 백퍼센트.
“우리 딸, 어디니?”
“응 아빠 나 버스 타고 가고 있어.”
“알겠다.”
전화가 끝나고 아빠한테서 문자가 하나 왔다.
“우리 딸 아빠가 버스정류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고마웠다.
근데, 서러웠다.
여성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이 없었다면 우리 아빠가 밤 늦게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저는 여대 오고 싶어서 왔어요.”
“아 정말? 왜?”
“페미니즘 하려고요.”
오늘 개강총회 때 18학번 새내기의 대답이었다.
내 일상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 해 보았다.
그렇다. 저게 내 일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약 20년동안 살아 온, 21살 여대생의 일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