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또 @snuff12님과 관련된 포스팅을 쓰고 있다.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글이다 했더니, 안티페미 페이지나 디씨에 돌아다니는 글과 매우 유사하다.
#1. 직썰
강력 범죄 여성 피해자 통계는 잘못되지 않았다
댓글이 좀 난장판이긴 하다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엉망인 댓글들을 살펴보면, 뭐 이런 것들이다.
- 살인 피해자 비율이 남자가 더 높으니 여혐은 없는 것이다.
얘네들은 가해자 성비는 보려고 하지를 않는다.
피해자 성비는 남녀 5:5 ~ 6:4이지만 가해자 성비는 남녀 9:1 ~ 8:2 이다. (대검찰청 자료) - 단순도촬은 흉악범이 아니다.
그러신 분들이 왜 워마드 홍대 누드모델남 몰카 사건에는 그렇게 광광거리나.
뭐 직접 들어가 보면 여혐하는 사람들이 여러 댓글을 달았는데, 보면 정신이 참 아득해진다. 그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있다. 남성과 여성이 범죄를 당하는 상황의 차이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뭔가 시각화된 자료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공포에 대한 서술을 위함이다.
#2. 여성의 삶
여성분들은 #2에 크게 공감하실 것이다. 아주 어린 여성부터 나이 많은 여성까지.
나는 단 한번도 대중교통 막차를 타 본 적이 없다. 여성이 밤 늦은 시간대에 돌아다니기엔 세상이 너무나 위험하다며 모부는 내 통금시간을 정해 놨다.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던가, 외박을 할 때면 같이 있는 사람들의 전화번호와 그 사람들의 모부의 전화번호까지 내 모부에게 알려야 한다. 게다가 엠티처럼 단체로 숙박 업소에 갈 때면 그 숙박업소의 상호명과 주소, 전화번호도 다 알려드려야 한다.
택시를 탈 때에 번호판 사진을 찍는다. 택시 안에서 일부러 가족이나 애인과 통화를 한다. 혹은 카톡으로 내가 택시에 탔음을 알린다.
밤에는 택시를 못 탄다. 무섭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 낯선 남자와 못 탄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낯선 남성이 오면 전화를 거는 척 하며 밖으로 나간다.
전 애인은 내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며 호신용품을 사주려고 했다. 그와 인터넷에 여러가지를 검색해 봤는데, 참 다양했다. 핸드폰 케이스부터 시작해서 별별 것들이 있었다.
집, 학교를 제외하고는 화장실에 마음 놓고 갈 수 없다. 나는 동덕여대생이다. 여대라서 비교적 화장실에 마음 놓고 갈 수 있다. 몇 주 전에 세종대에 갔었는데,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이런 정보가 돌았다. "다이소 실리콘으로 화장실 구멍들 막을 수 있다. 여성분들 사는 게 좋겠다."
어디 그 뿐인가. 요즘엔 여성들이 드라이버를 들고 다닌다.
나는 18살 때 헬스장에서 끔찍한 일을 당했었다. 워낙 인사성이 좋아서 -_- 당시 내가 다니던 헬스장의 모든 직원분들께 인사를 매일 같이 했었다. 어느 날, 헬스장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내가 정말 이 문장 만큼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한다.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ㅋ"
소름이 돋았다. 누군지 물었다. 헬스장 남자 직원이라고 하더라. 이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내 카톡은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한 거냐고 물으니, 회원 개인정보에서 몰래 빼냈다고 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가 내 운동하는 모습을 매일 매일 훔쳐봤을 거 생각하니 너무 역겹다. 내 개인정보에서 몰래 번호를 빼냈다는 것은, 내가 미성년자임을 그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인한테도 해서는 안 될 범죄를, 미성년자에게 한 것이다. 그를 차단하고 나서 그가 없는 시간대에 헬스장에 갔다.
문제는 또 일어났다. 대충 밤 10시였고, 이 헬스장은 비교적 일찍 문을 닫기에 이 시간대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날 나는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다른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성이 내게 다가와서는 대뜸 운동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그가 내 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도망쳤다. 정말 많은 과정을 생략한 이야기이다. 무서워서 생각해 내는 것 조차 싫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다시는 헬스장에 가지 못한다.
이태원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한 언니와 이태원에서 분짜를 먹기로 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정도 일찍 도착해서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서 있었다.
한 흑인 남성이 내게 다가와서는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어감상 대충 원나잇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대충 시간이 없다고 얼버무렸다.
다음 흑인 남성은 휘파람을 한 번 불고 나를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다음 흑인 남성 무리들은 나를 보며 "ohhhh-" 하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지나갔다.
언니가 오기 전까지 무서웠다.
작년 일이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집 앞 슈퍼마켓을 지나가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지나가는 동선 그대로 고개를 꺾으셨다. 확실히 나를 보던 게 맞다. 무서웠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나는 그저 서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운동을 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아저씨가 적당한 속도로 내 쪽으로 뛰어 왔다. 아저씨가 내 앞에서 속도를 늦췄다. 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었는데, 순간 그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그게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라 되게 소름 끼치는 씨익- 이었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그냥 피해의식이니, 잘못 짚었니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건 분명 소름 끼칠 만한 웃음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런 웃음을 짓고는 다시 앞을 보고 달려 갔는데, 문제는 그의 고개는 계속해서 나를 향해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창직대회에 다녀 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숙소 배치가 정확히 어떻게 됐던 건지는 모르겠다만, 성별에 따라 층을 나누어 썼던 것 같다. 우리 팀 숙소는 4층이었는데, 한 새벽 중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연신 "누구세요?"를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팀원들과 나는 모두 무서워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여성 연구원님이셨다.
전 애인이 수원에 살았었다. 한 번은 수원에서 데이트를 했었는데, 수원역 공중화장실에 갔던 적이 있다. 화장실 칸막이에 들어오니, "몰카로 추정되는 게 보인다면 신고해주세요"란 느낌의 경찰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근데 이 스티커에는 이런 메모들이 남겨 있었다.
"신고가 문제냐."
"몰카 처벌이나 똑바로 해라."
"신고는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
밤에 길을 돌아다닐 때에 뒤를 돌아본다. 혹시나 누가 있을까 봐.
밤에 길을 돌아다닐 때에 내 앞에 여성분이 걸어가는 때엔 일부러 헛기침을 한다.
"흠, 흠." 하는 내 얇은 목소리를 듣고 앞의 여성분이 안심하기를 바라기에.
좀 늦은 시간대에 집에 올 때면 모부와 친오빠가 날 걱정한다.
아빠는 자주 나를 데리러 오시며 오빠도 전화로 내 안부를 묻는다.
오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내게 "무서우면 데리러 갈게." 란 전화를 한다.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는 단순히 범죄 통계로 생겨난 말이 아니다.
그저 여성들이 삶에서 느끼는 불안 그 자체에서 나온 말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때에 여성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당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살인 피해자 남녀 성비가 거의 1:1이라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2 에서 내가 여성으로서 겪은 것들을 서술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공포를 느낀다.
남성은 여성 만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남성이 느끼는 것과 여성이 느끼는 것, 절대로 같을 수 없다.
@snuff12님의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이성적인 것 처럼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여성인 나와 동일한 수준의 공포를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혐오 살인/폭행 사건들을 보며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글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런 서술을 했다.
여성들이 불안해 하는 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피해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죠. (중략) 하지만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와 같은 사실관계 왜곡은 막아야겠네요.
참, 어리석은 인간이다.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인정은 하겠다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보다 살기 힘들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깔려 있다.
나 늘 하루 하루 불안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당신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게 아니다. 이게 정말 감정선 자극하려고 불쌍한 척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렇다면 그냥 나를 뮤트해라.
나와 상반되는 의견을 듣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 고통을, 여성의 눈물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아무 것도 아닌 것' 취급을 견디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