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구연=스토리텔링
그저 목소리만 동화스럽게 만들어서 동화책이나 전래동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동화구연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동화구연이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입니다.
동화구연은 원래 있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맞게 재가공(반드시 재가공이 필요합니다)해서 듣는 사람이 이야기가 말하는 이야기 속의 세계와 장소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화구연가라면 원이야기를 다양하게 가공할 수 있는 기술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동화구연가는 스토리텔러이면서 콘텐츠메이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동화구연가가 콘텐츠메이커인 스토리텔러가 되려면 먼저, 이야기에 대한 깊이가 있어야 하며 듣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가공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는 플롯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동화구연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방정환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했던지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던 일화를 종종 전해지는 것을 보면 방정환 선생님은 동화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스토리텔링의 힘을 알고 계셨나봅니다.
이때 방정환 선생님은 동화구연을 그냥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동화를 재가공해서 듣는 사람에게 맞는 방법으로 들려주었지요. 그래서 '백설공주이야기'와 '콩쥐팥쥐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지며 그들이 꿈꾸어야 할 독립에 대한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그저 아이들만 듣는 동화같았지만,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 아주 재미있었고 어른들도 즐겨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이러한 동화구연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장 많이 활성화했던 곳이 교회라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근대회 초기의 한국교회는 성경을 재미난 이야기로 아이들의 머릿속에 그리기 위해서 동화구연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적극 활용하며 발전시켰지요. 그랬기 때문에 일반동화구연에서도 동화구연의 역사를어을 때 꼭 언급하는 부분이 바로 교회동화구연의 역사입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실제 대한민국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교회동화구연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동화구연은 일반동화구연의 역사에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한 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회동화구연의 역사는 차차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 날에 이르러서는 그 놀라운 역사가 흐릿한 흔적으로만 남아버렸지요. 이제는 교회가 동화구연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 정도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전수 방법의 차이에서 찾고 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색동회'를 조직해서 체계적이고 일반적인 동화구연을 주도해 갔지만, 교회동화구연은 색동회와는 다른 방법으로 전수되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교회동화구연의 축복이었습니다(정형화되지 않고 계속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꾼의 정신이 같이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이어졌기에 전수자들의 자질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방대한 자료와 인적자원들의 관리하지 못하고 소실하는 불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한 교회동화구연은 그 힘이 점점 약해져 이제는 그 흔적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그러나 교회동화구연은 교회의 어린이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말씀전달 도구였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는 있습니다).
과거 교회들의 가장 큰 행사를 찾다보면 '성경고사'와 '성경이야기대회'의 자료가 많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교회에서 동화구연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개별방식으로 전수되며 그 힘이 약해져가던 교회동화구연은 부흥회 강사이며 동화구연가이셨던 고안성진목사님과 고이순한 목사님을 통해서 다시 한번 붐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안성진 목사님은 최초의 기독교 어린이 문서선교 단체인 기독교아동문화사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교회동화구연을 책으로 많이 만드셨고 히브리어 헬라어 교재로 유명한 이순한 목사님은 전국교회의 어린이 부흥회와 강습회로 교회 동화구연의 붐을 다시 한번 일으키셨습니다. 이때 현재 주동화 대표이시며 한국전래동화 연구소 소장이신 정형권 목사님이 동화구연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셨고 지금도 주동화를 통해서 그 역사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번 책에 풀기로 하고 고 안성진목사님의 일화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6.25 당시 공산군이 교회를 폐쇄하고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안성진목사님이 교사로 있던 교회에 끊임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그 앞을 막고 있어도 안성진목사님의 동화를 듣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동화를 들으러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화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셨던 안성진목사님은 그 후에도 자신에게 주어주신 재능을 십분 활용하여 어린이 사역을 하며 '기독교어린이문화관'을 설립하셨습니다.
기독교어린이문화관은 이땅의 어린이들의 동심을 달래고 어루만져주기 위한 목사님의 엄청난 투자요, 사랑이었습니다.
기독교어린이문화관은 그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정신과 높은 문학 소양을 가지고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출판과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무수한 역작들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역사 속으로 많이 사라져버려서 그 흔적을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