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싸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끓여둔 스프와 빵으로 대충 때울 생각이었다. 원래 계획된 식단대로라면, 오늘 저녁은 생선 구이였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책 나르는 일, 그리고 하루츠와 있었던 일로 인해 물고기를 잡을 시간적 여유는 마물 영역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만싸는 큐의 간사한 계획에 투덜댔다. 그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만싸가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뭐냐?”
“형이 너에게 바이올린을 주느라 고생한 나머지 미처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지.”
만싸는 큐가 같이 밥을 먹으러 온 것을 눈치채었다. 그리고, 만싸에게는 그것을 빌미로 큐를 놀리는 재미를 좀 찾아먹을 권리가 있었다.
“…그냥 ‘만싸님, 배가 고파요. 식은 스프라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주실수 있나요?’ 라고 얘기하면 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큐는 그 평온한 표정과 무뚝뚝한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혹은, 그냥 ‘제가 형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다면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하고 이걸 함께 먹는 방법도 있지.”
그 대신, 큐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들어보였다. 큐의 손에는 줄에 꿰인 꽤 큼직한 비단 잉어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만싸는 그것을 보고는 웃어버렸다. 아무래도 큐는 자신의 오늘 저녁 식단까지 예상한 모양이었다. 미워하기 힘든 녀석이다.
“물론, 네가 형을 위해 요리를 해야겠다.”
“너에게 맡겨선 잉어가 아깝지. 내놔.”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은가? 아우.”
큐는 고개를 조금 젖히며 약간 미소를 품었다. 만싸는 손을 뻗어, 잉어를 꿰어둔 줄을 낚아채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꾸했다.
“영광. 됐냐?”
“뭐, 알아들을 만 하군.”
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만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만싸가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뚜막 위에 올리고 불을 옮기고 잉어를 다듬는 동안, 큐는 선반에서 그릇을 꺼내고 식기를 꺼내고 배치했다.
“형이 잉어를 잡는 동안 네가 호수에 안 온 것이 이상하더군.”
“아. 하루츠가 신경쓰여서 가 봤지.”
“그래?”
큐는 잠시 멈칫하다가, 마저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만싸가 잘 발라낸 잉어를 간하여 굽기 시작했다. 큐는 그제서야 그릇에 스프를 뜨고, 빵을 잘라 준비했다. 만싸가 잉어를 다 요리하여 가져왔을 때, 만싸는 자신과 큐를 제외하고, 추가로 하나의 자리가 더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누가 한 명 더 오기로 했어?”
그러자 큐는 빈 의자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
“소개하지. 내 친구 ‘브루클린’이다. ‘브루클린’? 얘는 내 착한 동생 만싸다. 아니. 이래 보여도 남자다.”
“…그런데, ‘이래 보여도’가 뭔지 물어봐도 되냐?”
“실례군. 귓속말로 대화한 건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만싸는 피식 웃으며 큐의 장난을 구경했다. 큐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브루클린”과 몇 가지 대화를 하고 나서, “브루클린”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브루클린”은 화장실에 간 것 같았고, 그 뒤에 큐가 만싸에게 물어보았다.
“‘브루클린’이 없을 때 하는 얘기지만, 네가 보기엔 어때.”
“…뭐가?”
“‘브루클린’ 얘기다. 괜찮아 보이나?”
“…보인다면 말이지.”
만싸는 어디까지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만싸는 큐가 “브루클린”을 위해서 스프를 뜨고, 잉어를 나눠주고, 빵까지 덜어주는 것을 보고 점점 갑갑해졌다.
“화장실에 갔다 왔을 때, 아무 것도 먹을 게 없다면 ‘브루클린’은 가슴이 많이 아플거다.”
“…저기 혹시, ‘브루클린’이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물론 배가 고플 거다. 내기할까? 브루클린이 이걸 반 이상 먹는다면 내일 형이 나머지 책을 옮기는 걸 도와줄 것.”
“또 책 받으러 가는 거냐? 좋아. ‘브루클린’이 한 입이라도 먹으면 내가 옮길 책들 다 옮길 때까지 내가 다 도와줄께.”
만싸의 다짐이 끝나자 마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큐는 씨익 웃으며 만싸에게 말했다.
“형을 도와주겠다는 너의 마음, 잊지 않겠다.”
그리고 큐는 문을 열었다. 하루츠가 서 있었다. 큐는 하루츠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 묻는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화장실 다녀 왔나?”
“…아니? 그렇게 급하진 않은데.”
하루츠는 큐가 있는 것을 보고 얼떨떨해졌지만, 큐와 만싸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츠는 저녁 시간을 틈타 만싸에게 뭔가 물어보려던 계획을 뒤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식사가 준비되어있으니 와서 먹지.”
큐는 하루츠를 “브루클린”의 자리로 안내했다. 하루츠는 이상하게 세 명의 식탁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던 건 아냐?”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브루클린’에게 주려고 했던 음식이므로 하루츠가 먹는 것이 나았다. 하루츠가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만싸는 설득을 포기하고 그냥 큐의 말에 동조하기로 했다.
“아냐, 아냐. 괜찮아. 하지만 큐, 여긴 내 집인데?”
“물론 형 집이 형 집이고, 네 집이 형 집이지.”
만싸는 능글맞게 넘어가는 큐를 보고 이를 갈았다. 화장실 얘기로 미루어 볼 때, 큐는 아무래도 “하루츠”가 “브루클린”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우겨서 자신의 노동력을 갈취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만싸는 큐에게 말했다.
“난 이거 인정 안 해.”
“그 얘기는 식사가 끝나고 하지.”
큐의 세 명 분의 준비는 정확한 것이 되었다. 만싸는 그리고나서야, 하루츠가 맘이 상할 때, 꽤 자주 자신의 집에 왔던 것을 생각해내었다. 만싸는 큐가 만싸가 하루츠와 만났다는 단서 하나만으로 하루츠가 저녁 시간 즈음에 만싸네 집으로 올 것을 예상해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잡다한 얘기가 이리 저리 오고간 뒤에 만싸가 하루츠에게 물었다.
“그래서. 에트나 님과 만난 건 어떻게 되었어?”
하루츠는 만싸의 질문을 듣고 먹던 포크를 잠시 멈췄다. 만싸는 그 물건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루츠는 조금 머뭇하다가, 중요한 부분만 숨기고 말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일 없으시다더라. 그리고 내가 겪게 된 운명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더군.”
“그래?”
만싸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츠가 “별 일 없으시다” 라고 표현한 내용은 겉으로는 에트나 님의 안부에 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사실은 “그 물건”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큐 역시도 그 대답만으로 딱히 이상한 것을 느끼진 못했는지, 별다른 질문 없이 다른 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브루클린’ 말인데.”
“풉.”
만싸는 입에 물고 있던 스프가 조금 새어나온 것을 느끼고 급히 냅킨을 가져와 닦았다. 하루츠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했고, 큐는 “먼 곳에 있는 내 친구.” 라고 답했다. 만싸는 거기에, “‘큐 식’ 친구가 있어.” 라고 덧붙였다. 하루츠는 “큐 식” 이라는 표현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큐가 하는 가상의 농담거리인 것이다.
“형이 보기엔 높으신 분이 ‘브루클린’에게 뭔가를 한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그 분이 그렇게 죄책감에 빠져서 ‘브루클린’을 도와주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안 그런가?”
“어, 그래. 그래.”
만싸는 대충 대충 대꾸해주고, 다시 스프를 한 입 머금었다. 아무래도 큐는 브루클린이라는 존재를 “현실화”시켜서, 자신을 어떻게든 책을 나르는 것을 돕도록 만들 계획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브루클린”이 아니라 “하루츠”이고, “하루츠”가 “브루클린”이라는 것을 만싸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
“만싸?”
그리고 만싸는 멈춰섰다. 그것이 꽤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에, 하루츠는 동작이 멈춘 만싸를 빤히 바라보았다. 큐는 만싸를 흘끔 바라보고는 잉어를 잘라 입으로 가져가면서 말했다.
“‘브루클린’ 얘기가 그렇게 재미가 없다면 그만두지. 별 수 없이 책은 나 혼자 옮겨야겠군.”
만싸는 입에 넣은 스프를 억지로 삼켰다.
“…크흡, 크흠. 뭔 건더기가… 아냐, 내가 도와줄께.”
“아직도 옮길 책이 남았어?”
하루츠는 만싸와 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만싸는 옆에 놓인 잔에서 물을 마시며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큐가 대답했다.
“학자님이 좀 더 가져가길 원하더군. 아우, 고맙다. 형은 아우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뭘.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얘기가 끊길 뻔 했다는 것을 깨닫고, 만싸는 큐에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만싸는 입을 열지 않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거기 에트나 님도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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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시간에 있었던 대화는 만싸에게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하루츠는 뭔가 하고 싶은 말 - 만싸의 추측에 따르면 ‘묻고 싶은 말’일 것이지만 - 이 많은 듯 했으나, 큐가 하루츠에게 꼭 줘야하는 책 두 권이 있다면서 거의 억지로 끌고 가 버렸다. 덕분에 만싸는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만싸는 식탁 테이블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며 하루츠가 전해 준 이야기를 곰씹어보았다.
‘내가 겪게 된 운명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더라’
만싸는 에트나 님은 하루츠가 요정이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에트나 님의 능력은 마녀를 봉인하는 데 사용했고, 웨인이 세계수 아래에서 하고 있는 일은 아마도 “봉인된 마녀의 물건에 무언가 수작을 부려, 결국엔 그것이 동작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거기에 얼마의 시간이 들지는 알 수 없지만, 에트나 님의 말에 따르면 아마 하루츠의 수명을 훨씬 초월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웨인의 수명 역시도 초월하는 일일 것이고, 웨인의 수명 이내에서 뭔가를 만든다면 아마 “반영구적인 형태로 마녀의 물건을 봉인하는 방법이나 도구” 일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하루츠에게 그런 사과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즉, 에트나 님은 봉인을 풀어줄 생각도, 마녀를 다시 돌이켜 죽일 생각도 없다. “능력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마녀를 봉인할 때에 그 능력이 있었다면 대신 마녀를 죽였지 봉인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만싸는 그 미안함의 정도가 너무 크다는 점에 관심을 뒀다. 마녀를 봉인하느라 들어간 노력과 피해의 정도로 얘기한다면, 에트나 님이 훨씬 심하다. 에트나 님은 요정으로서의 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수명과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이미 사실상 인간에 가깝다. 요정으로서의 그의 길고 길었던 삶을 생각해보면, 그의 지금의 생활은 늙어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노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면 마녀가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그는 죽을 수 조차 없다. 마녀의 “물건”을 동작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성공할 때 까지, 그는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하루츠는 그에 비하면 요정이 되지 못한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인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점에서 큐의 지적은 날카롭다. 만싸는 큐가 지적한, “죄책감”의 영역에 주목했다. 애초에 저주를 건 사람은 마녀로서, 봉인되기 전에 하루츠에게 “요정으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저주”를 걸어버린 것이지 에트나 님이 하루츠에게 저주를 건 것이 아니다. 미안해해야 한다면 에트나 님이 아니라 마녀가 미안해해야 할 것이다. 만싸는 턱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요정으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저주?”
만싸는 이를 악물었다. 그 저주를 걸어야 한다면,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지 모르는 하루츠의 아버지나 하루츠에게 걸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저주의 대상은 당연히 에트나여야 한다. 에트나가 요정으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에트나의 봉인 시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복수? 원한? 마녀는 그런 저주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그러한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마녀는 에트나에게 저주를 걸었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저주는 하루츠에게 떨어졌다. 거기에 더해서, 에트나는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에트나는 자신에게 걸려고 한 저주를 하루츠에게 “돌려버린” 것인가?
만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연히 하루츠는 이것을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하루츠는 에트나 님을 존경하고 자신이 저주를 받게 만든 아버지를 미워한다. 큐가 이것까지 알아차렸을까?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은 이것을 알고 있고,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냐는 것이다.
에트나가 마녀의 “물건”을 마을 한가운데의 세계수 아래에 봉인했을 때, 만싸는 언젠가 마녀의 의지가 마물들을 이용해 그 “물건”을 되찾으려고 할 것임을 눈치챘고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해 왔다. 검술, 전술, 방어술, 생존술, 그 밖에 필요한 것들 모두 - 요정의 능력을 제외하고 - 를 익히고 배워왔다. 만싸는 에트나가 마녀의 “물건”을 마을 한 가운데의 세계수 아래에 봉인한 행동이 필요한 것이었다고 인정했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불만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 하루츠의 운명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과연 에트나가 그러한 행동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일인가?
만싸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마을 멀리서 갑자기 비명 소리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악!!”
“마물.. 마물이다!!! 마물들이 쳐들어왔어!!”
“…젠장!”
만싸는 빠르게 팔에 방어용 도구를 착용하고, 가죽을 두텁게 덧댄 재킷을 꺼내 걸쳤다. 그리고 옆에 세워둔 칼집을 들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이 불필요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