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츠는 문을 닫고 나왔다. 에트나님의 마지막 말이 귀에 여운을 두고 반복적으로 울렸다.
‘내가 그를 여기 있게 했네.’
“…왜?”
하루츠는 근처에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세계수 구조물을 중심으로 하는 광장에는 구조물을 편히 볼 수 있게 하는 용도로 배치된 벤치들이 몇 개가 있었다. 하루츠는 그 중에서도 자신이 방금 나왔던,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잘 보이는 벤치를 골라 앉았다. 에트나님이 밖으로 나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루츠는 그러면서 에트나의 말의 의미를 상상했다. 에트나가 웨인을 거기 있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싸는 웨인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으니, 하루츠 자신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만, 그것을 순순히 얘기해 줄 지는 미지수다. 애초에 만싸는 웨인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비난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그것이 아니라는 것만 증명할 뿐, 다른 정보는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세계수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목격된다. 마물이 잘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세계수는 대체로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을에 있는 세계수 역시 그러하다. 마물이 잘 접근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으니, 당연히 사람이 모여살기가 쉽고, 그래서 마을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부분의 마을은 세계수를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츠는 처음 세계 각지에 세계수가 잔뜩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 기억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세계수는 마을마다 있는 마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기본 시설에 가까울 뿐이다. 마치, “성벽” 같은.
하지만 저 세계수가 진짜 세계수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에트나님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에트나님은 저것이 진짜 세계수라고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참일 것이다.
…아니면, 필요에 따라서는 에트나님도 거짓을 말하는 것일지도?
하루츠는 흠칫했다. 만약 웨인이 세계수를 이용해 뭔가를 꾸미려고 하는 녀석이고, 또한 그러한 능력이 실제로 있다면, 여기가 진짜 세계수라고 하는 정보를 말해주는 것과 여기에 저 녀석을 있게 해 주는 것은 말하자면 다른 “진짜 세계수”로부터 그 녀석을 떼어놓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것 보다는 웨인을 그냥 이 자리에서 해치워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루츠는 머리를 계속 굴렸다. 마물이 접근하지 못하는 보통의 세계수를 “모조 세계수”라고 칭한다면, “진짜 세계수”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왜 요정들 조차도 저 세계수 - 다른 세계수들과 딱히 다르지 않은 평범한 세계수 - 를 왜 세계수라고 부르는 것일까?
“뭔 생각하냐?”
“우왓!”
그의 바로 왼쪽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루츠는 깜짝 놀라서 벤치에서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하루츠는 벤치의 오른쪽 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벤치에서 떨어졌다. 하루츠는 바닥에 부딪혀 욱신거리는 팔과 옆구리를 주무르며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만싸였다.
“…만싸로군.”
“다행히 머리에 충격은 없나 본데. 오늘이 몇 일인지는 기억 나지?”
만싸가 싱긋 웃으며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하루츠는 만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만싸가 벤치에 앉았고, 하루츠도 그 옆에 앉았다. 만싸라면 웨인에 대해 알고 있을 테지만, 몇 번이고 물어본 결과로는 만싸는 그 얘기를 순순히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츠는 이제는 뭐든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에트나님이 나오기 전까지라면, 만싸에게 얘기를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웨인.”
“…몇 월 웨인 일 인데?”
“농담 아냐. 얘기 해봐. 해 줄 수 있는 거 전부 다.”
만싸는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욱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항상 세계수와 관련해서는 표정이 굳어 있는 하루츠였지만, 이번엔 보통 때보다 좀 더 심했다. 하지만 만싸는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말해줄 수는 없었다.
“질문해봐.”
하루츠에겐 불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것을 먼저 듣는 것이 낫다.
“왜 웨인이 저기 있는 거지? 에트나 님이 방금 나에게 그러더군. ‘자신이 그를 여기 있게 했다’고. 그건 무슨 의미지? 거기엔 그…”
하루츠는 멈칫했다. 만싸에게 마녀의 “그 물건”에 대한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 비밀인 것은 확실하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록 좋은 비밀. 만싸는 떠벌리고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만, 질문하면 대답하는 타입이다. 만싸는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루츠가 질문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자, 만싸는 잠시 기다리다가 되물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만 해 주면 되는 건가?”
“어, …응.”
만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턱을 조금 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에트나 님이 웨인을 거기 있게 한 건 맞아. 웨인은 거기서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하루츠는 이해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 있는 곳에 필요도 없는데 굳이 찾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만싸의 대답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는 일이 벌어져서 ‘그 물건’이 드러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너!?”
놀라는 하루츠를 두고, 만싸는 그대로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루츠 또한 만싸가 일어나자 따라 일어섰다. 하루츠는 만싸가 그 물건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하지만, 그가 설명한 내용과 그가 알고 있었던 내용을 함께 생각해보면, 만싸가 웨인을 감싸고 도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츠는 만싸가 그 물건에 대한 진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더 무엇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만싸! 너 뭘 더 알고 있는 거야? 얘기해줘!”
다만, 만싸는 더 이상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만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걸어가면서 얘기했다.
“더 좋은 질문을 준비해봐. 그럼 더 나은 답변이 나올꺼야.”
만싸는 성큼성큼 걸어서 저 쪽으로 가 버렸다. 하루츠는 만싸를 쫓아갈지, 아니면 에트나님이 세계수 구조물에서 나오는 걸 기다려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가 어영부영하고 있는 사이에, 만싸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국 하루츠는 그를 따라가지 못한 채, 벤치에 앉았다. 이제는 에트나 님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하루츠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웨인은 그 물건이 거기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심지어 그것을 지키는 임무인 것 조차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까의 반응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에트나 님이 하루츠를 내보내고 웨인과 같이 지하로 내려간 것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츠는 도대체 왜 웨인이 그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웨인이 마을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고 교류도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하면 효과적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웨인 본인에게 그 일을 해야 하는 필요성은 뭘까?
——-
에트나는 세계수 구조물 지하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섰다. 지하의 복잡한 갈림길을 지나 긴 계단을 내려간 뒤에야 나오는 방이다. 에트나는 인간의 연구에 대한 집착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윗쪽 부분을 제외한, 이 아랫쪽의 길고 복잡한 복도와 방들은 사실상 웨인과 그 아버지 둘이서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수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
“다 왔다.”
“그렇군.”
웨인은 방 안에 들어서서 벽의 뭔가를 만졌다. 천장에서 빛이 “만들어져서” 방 안을 비추었다. 방 한 쪽의 벽 한 가운데를 중심으로 둥글게 끈과 막대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벽의 그 가운데에는 망원경 처럼 생긴 뭔가가 옆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무래도 세계수 내부에서 저주와 함께 네 힘이 새어나가기 시작한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군.”
에트나는 방을 나섰다. 관찰과 기록과 분석은 웨인이 한다. 자신은 그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애초에 없었다. 이럴 때는 맡겨두는 편이 낫다. 웨인은 방 안의 빛을 “끄고”, 에트나를 따라 나섰다. 둘은 다시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실제로 이 곳은 웨인이 손님 접대용으로 쓰는 방이며, 문으로 들어왔을 때에 항상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방이었다.
“갔다 온 일은 어떻게 되었지?”
“네 예상대로다. 마물들이 더 날뛰기 시작했어.”
“그렇겠지.”
웨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깊게 생각할 때 하는 습관 같은 것이다. 에트나는 웨인의 그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웨인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일단 마물을 되는대로 정리하면서 마물이 생겨나는 곳을 찾아서 막아야 해. 남쪽일 거야. 저주가 흐르는 방향이 그 쪽이니까. 그 쪽으로 갈 수록 네 능력도 강해질테니, 찾기는 쉽겠군. 뭔가 저주가 새어나오는 이유가 있을 테니, 그걸 찾아내서 뽑아내고 막아버리면 될 거다. 딱따구리짓을 해야지.”
“그렇군.”
딱따구리는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를 파먹는 새다. 나무에 구멍을 내서, 벌레를 빼내어 잡아먹는다. 나무는 일시적으로 구멍이 생기지만, 벌레가 없어지고 나면 더 건강해지고, 딱따구리가 판 구멍은 나무 스스로 메꿀 수 있다. 에트나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다만, 마물을 충분히 해치운 뒤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처리했다간 마물 한 가운데에서 능력도 거의 없이..”
“알고 있다.”
에트나의 능력은 “그 물건”과 함께 봉인되었다. 그러나 “그 물건”의 저주가 새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에트나의 능력 역시도 함께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에트나는 마물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지만, 만약 저주가 새어나오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는다면? 그 때에는 다시 에트나는 평범한 여행자가 될 뿐이다. 그리고 에트나가 죽는다면, “그 물건”을 봉인하는 주체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봉인은 깨질 것이고, 마녀가 되돌아오게 된다.
“하루츠는 어떻게 할 거지?”
“방해되지 않게 조치하겠다.”
웨인의 질문에 에트나는 조용히 답했다. 그러나, 사실 에트나에게도 딱히 좋은 방법은 없었다. 웨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데리고 다니는 건 위험하다. 하루츠는 죽어선 안 돼.”
“안다.”
“차라리 모든 걸 알려주는 편이 나을 텐데. 이해해 줄지도 모르고.”
“그럴 수 없다.”
에트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은 요정이 되는 것을 꿈꿔왔던 하루츠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에트나는 웨인과 몇 가지 얘기를 더 나눈 뒤, 세계수 구조물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이미 꽤 흘러,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다만 세계수 주변은 구조물로 인한 반짝임으로 주위에 비해 밝은 편이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루츠는 에트나가 나오는 것을 보자 바로 달려왔다. 에트나는 많은 것을 궁금해하는 듯한 느낌의 그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츠는 조금 기다리다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만싸가 말하길, 에트나 님이 웨인을 저 안에 있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더군요. '그 물건'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
하루츠는 그것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이 에트나 님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루츠는, 자신이 실제로 에트나 님의 판단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물론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다. 하루츠는 자신이 에트나 님의 결정을 의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난 뒤에야 하루츠는, “에트나 님의 판단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에트나 님의 판단을 믿거나” 하는 둘 중의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세계수 아래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웨인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서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해한다.”
에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츠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루츠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낮에 학자님 집 앞에서 무심코 듣게 되었습니다만, 에트나 님의 능력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에트나님이 해 둔 마녀의 물건의 봉인이 풀린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
하루츠는 더 긴 대답을 원했지만, 에트나는 입을 다물었다.
“돕게 해주십시오.”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
에트나는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하루츠는 이를 악물었다. 자격? 울컥하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왔다. 하루츠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제가 요정이 아니라서 그렇습니까? 저는 어머니에게서 요정의 피를 받았습니다! 마녀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저는 요정이 되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그 마녀를 해치우기만 한다면 저주가 풀리고 저는 요정이 될 수 있습니다!”
“날 죽일 것인가, 하루츠?”
하루츠는 움찔했다. 에트나 님이 하루츠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에트나의 말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마녀를 봉인한 것은 나다. 날 죽여 마녀의 봉인을 풀지 않으면 마녀는 풀려나지 않는다. 날 죽이고 마녀의 봉인을 풀 것인가? 그렇게 한 뒤에 다시 마녀를 죽여 너에게 걸린 저주를 풀 것인가?”
“…아니, 그런 의미는…”
하루츠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하루츠는 무의식중에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하루츠가 물러서자, 에트나는 눈을 내리깔며 하루츠에게 다시 무덤덤한, 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요정이 되어, 죽고 난 뒤에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넌 그럴 수 없다. 네 저주는 마녀에 의한 것이고, 마녀는 내가 봉인했다. 난 마녀의 생명력이 모조리 소진될 때 까지 죽을 생각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너는 그 전에 수명이 다 되어 죽는다.”
하루츠가 이미 알고 있었던, 그러나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다시 한 번 에트나의 입에서 나왔다. 요정은 죽지 않는다. 다만, 죽고자 할 때에 그 육신이 죽고, 정신은 요정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하루츠의 어머니는 하루츠를 둔 채 요정의 세계로 돌아갔다. 하루츠는 자신 역시 요정이 되어, 죽고 나면 어머니와 함께 요정의 세계에 있을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녀의 저주가 그가 요정이 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하루츠는 마녀가 죽기 전에 인간으로서 수명이 다해 죽을 것이다. 하루츠는 다시금 몰아친 좌절감에 고개를 떨궜다.
“…네가 겪게 된 운명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
하루츠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억지로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쥔 채, 하루츠는 만싸의 집으로 향했다. 자신의 집에는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하루츠는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요정이 되지 못하는 것에는 아버지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마녀에게 어떤 원한을 사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원한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요정이 될 수 없도록 만드는 저주를 걸게 된 원인이 아버지인 이상, 하루츠는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바라볼 수 없었다. 특히 오늘 밤은, 아버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